나의 애독시(174) : 가을의 향기 / 김현승

양귀비.jpg



나의 애독시(174)

 

가을의 향기 / 김현승

 

남쪽에선 과수원에 능금이 익는 냄새

서쪽에선 노을이 타는 내음

 

산 위엔 마른 풀의 향기

들가엔 장미들이 시드는 향기

 

당신에겐 떠나는 향기

내게는 눈물과 같은 술의 향기

 

모든 육체는 가고 말아도

풍성한 향기의 이름으로 남는

()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여

높고 깊은 하늘과 같은 것들이여

 

 

지금 가을의 향기가 사방으로 퍼지고 있지요? 잘 느낄 수 있는 가을 향기들이 쭈욱 나열되고 있지요. 낯선 향기가 있다면 당신에겐 떠나는 향기일 겁니다. 그 향기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이별의 향기 후에 내게는 눈물과 같은 술의 향기가 나는데 그건 슬픔의 향기가 되겠군요. 가을의 향기 뒤에는 가을의 마음이 있을 겁니다. 가을의 마음이란 가랑잎이 허공을 스쳐 대지의 품으로 가듯이 모든 육체는 가고 다만 향기의 이름으로 남는, 그러기에 ()하고 아름다운 것이며 높고 깊은 하늘과 같은마음일 겁니다. 과연 우리는 마지막으로 어떤 향기를 남겨야 할는지요?

 


모든 것의 척도가 으로 귀결되는 사회는 숭고함과 아름다움의 시간을 우리에게서 가차 없이 앗아가 버립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감흥(感興)’이라는 말을 잊고 기계처럼 무감각하게 살게 되지요. 아름답다는 말의 은 알지만 아름답게 사는 방법은 모릅니다. 모른다기보다 외면하고 있다는 편이 옳을 겁니다. 낙엽 지는 날의 쓸쓸함과 첫눈 오는 날의 설렘은 한가한 사람들의 배부른 감정처럼 여겨지겠지요. 극단적인 예이겠지만, 어떤 이는 꽃보다 돈이 아름답다라고 서슴없이 말한다고 합니다. 그의 말은, 모든 감흥이란 돈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세속을 넘어서고자 하는 숭고한 정신과 자연이 우리에게 전하는 미()의 속삭임이 의 손아귀에 갇혀 잊히는 이 시대의 가을은 과연 풍요롭고 행복한 계절일는지요. 이 시가 발표된 연도는 정확하지 않지만 1963년에 발간된 시집 옹호자의 노래에 수록된 것으로 미루어본다면 1960년대쯤에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전쟁 후 10년의 시간은 모두에게 어지간히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도 숭고하고 아름다운 시가 쓰였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능금이 익는 냄새노을이 타는 내음’, ‘마른 풀의 향기장미들이 시드는 향기로 후각화된 가을의 정취는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가슴에 물씬물씬 와닿습니다. 냄새는 풍경을 깊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지요. 여기에 당신떠나는 향기에게 남은 눈물과 같은 술의 향기가 더해짐으로써 시인의 가을은 아주 짙게 삶의 애틋한 여운들을 풍깁니다. 익어가는 것과 말라가는 것, 영원한 것과 유한한 것, 떠나는 것과 남는 것, 상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가을의 풍성한 향기로 담아내는 시인의 정신이 숭고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하고 아름다운 것들높고 깊은 하늘과 같은 것들을 늘 가슴 한 켠에 담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몸은 감각의 그릇입니다. 그 안에는 기쁨과 슬픔, 고통과 환희의 시간들이 담겨있습니다. 돈의 바퀴에 깔려 감흥을 잃은 우리의 몸을 높고 깊은가을의 향기로 다시 일깨우는 것, 그것이 아름답게 사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





게시글이 어떠셨나요?



다른 이모티콘을 한번 더 클릭하시면 수정됩니다.

2,908개의 글

글 번호제목작성자작성일조회
2908서건석05:305
2907서건석26.02.1514
2906서건석26.02.1416
2905서건석26.02.1315
2904서건석26.02.1218
2903서건석26.02.1127
2902서건석26.02.1021
2901모하비26.02.0928
2900서건석26.02.0930
2899서건석26.02.0825
2898서건석26.02.0727
2897서건석26.02.0617
2896서건석26.02.0525
2895서건석26.02.0421
2894서건석26.02.0329
2893모하비26.02.0230
2892서건석26.02.0223
2891서건석26.02.0120
2890편영범26.01.3141
2889편영범26.01.3146
2888서건석26.01.3119
2887서건석26.01.3028
2886서건석26.01.2923
2885서건석26.01.2828
2884서건석26.01.2724
2883모하비26.01.2653
2882서건석26.01.2624
2881서건석26.01.2525
2880서건석26.01.2420
2879서건석26.01.2323
2878서건석26.01.2233
2877서건석26.01.2131
2876서건석26.01.2023
2875모하비26.01.1967
2874서건석26.01.1923
2873서건석26.01.1822
2872서건석26.01.1726
2871서건석26.01.1623
2870박인양26.01.1575
2869편영범26.01.1557
2868편영범26.01.1566
2867서건석26.01.1533
2866서건석26.01.1434
2865서건석26.01.1336
2864모하비26.01.1258
2863서건석26.01.1247
2862서건석26.01.1156
2861서건석26.01.1036
2860서건석26.01.0935
2859서건석26.01.0835
2858서건석26.01.0737
2857서건석26.01.0631
2856모하비26.01.0564
2855서건석26.01.0542
2854서건석26.01.0440
2853서건석26.01.0342
2852서건석26.01.0262
2851서건석26.01.0236
2850서건석25.12.3146
2849서건석25.12.3042
2848모하비25.12.2939
2847서건석25.12.2931
2846서건석25.12.2838
2845편영범25.12.2753
2844편영범25.12.2757
2843서건석25.12.2746
2842서건석25.12.2657
2841서건석25.12.2547
2840서건석25.12.2537
2839서건석25.12.2446
2838서건석25.12.2344
2837모하비25.12.2276
2836서건석25.12.2241
2835서건석25.12.2135
2834서건석25.12.2068
2833서건석25.12.1968
2832서건석25.12.1841
2831서건석25.12.1748
2830서건석25.12.1645
2829서건석25.12.1551
2828서건석25.12.1447
2827서건석25.12.1346
2826서건석25.12.1247
2825서건석25.12.1136
2824서건석25.12.1051
2823서건석25.12.0944
2822모하비25.12.0859
2821서건석25.12.0845
2820서건석25.12.0753
2819서건석25.12.0648
2818모하비25.12.0554
2817서건석25.12.0549
2816서건석25.12.0446
2815서건석25.12.0345
2814박인양25.12.0295
2813서건석25.12.0254
2812모하비25.12.0156
2811서건석25.12.0142
2810서건석25.11.3039
2809편영범25.11.2986
화살표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