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173) : 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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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173)

 

 

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주검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사랑이란 젊은 시절 한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홍안의 젊은 날 시작하여 백발이 되도록 한평생 가꾸어 가는 정직한 농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좋고 기쁘고 웃음이 흘러나오는 때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슬픈 일, 절망까지도 껴안을 줄 아는 일입니다. 아울러 건강할 때만이 아니라 병들어 고통받으며 힘들어하거나 괴로워할 때 오히려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승을 넘어 저승까지도 함께 가는 영원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랑은 그만큼 진실하고, 정직하고, 치열하며,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영원에 호소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 태도는 이와 같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건강하여 힘차고 발랄하게 살아 있을 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죽게 되었을 때도 죽고 난 뒤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게 진정한 사랑인 것이지요. ()

 

사랑하는 것은 작은 나를 버리고 더 큰 나를 맞는 일입니다.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작은 생각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지요. 대상의 일면을 넘어 전체를 보듬게 될 때 사랑은 비로소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때 사랑은 감각적 만족이나 위안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알게 하고, 큰 세계 속으로 자신의 존재성이 고양되어 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한용운 시인도 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은 나의 일면적 모습인 홍안 미소 건강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 백발 눈물 죽음까지 보듬어줍니다. 그 사랑은 나의 존재를 온전히 의미 있게 합니다. 나의 전부를 사랑해주는 당신이기에 나 역시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의 사랑 이상으로 나 또한 당신을 사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시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당신같이 되려면, 나의 마음은 도대체 얼마나 커져야 할까요? ()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젊은이가 있으면 이 시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만약 제가 주례를 서게 된다면 주례사 대신 이 시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한용운 시인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붉고 고운 얼굴(홍안)만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내가 고울 때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늙어서 머리가 하얗게 되고 시들어 갈 때도 사랑할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한다는 겁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도 까닭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미소 짓고 즐거워하고 기뻐할 때만 사랑하지만 당신은 내가 눈물 흘리고 고통스러워하고 슬퍼할 때도 사랑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기쁘고 즐거울 때 사랑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기쁨이 사라지고 눈물과 슬픔의 날을 보내야 할 때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인 겁니다. 건강하고 젊고 발랄한 사람을 사랑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건강이 나빠지고 마침내 죽음이 찾아올 때도 죽음 이후까지도 사랑할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런 사랑이 진짜 사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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