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168) :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 최영미

설경13.jpg



나의 애독시(168)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 최영미

 

 

나의 인생에도

한번쯤

휑한 바람이 불었겠지

 

바람에 갈대숲이 누울 때처럼

먹구름에 달무리질 때처럼

남자가 여자를 지나간 자리처럼

시리고 아픈 흔적을 남겼을까

 

너의 몸 골목골목

너의 뼈 굽이굽이

상처가 호수처럼 괴어 있을까

 

너의 젊은 이마에도

언젠가

노을이 꽃잎처럼 스러지겠지

 

그러면 그때 그대와 나

골목골목 굽이굽이

상처를 섞고 흔적을 비벼

너의 심장 가장 깊숙한 곳으로

헤엄치고프다, 사랑하고프다

 

 

 

이런 당돌한 어법의 연가를 읽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배신감으로 인한 증오의 감정과 사랑을 회복하려는 욕구와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고 보면 될는지요. 사랑을 하다 보면 상대방과의 갈등보다는 자신의 감정과의 싸움을 벌려야 하는 경우가 더 허다하죠. 바로 이 갈등의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심정을 격정적인 어조와 솔직한 성적인 표현을 빌려 나타낸 연시입니다. 기성의 어법을 깨뜨리는 신세대적이며 자유분방하고 당돌한 수사는 신선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한 느낌을 주는데 어떻습니까? 그런데 참 아도니스를 알고 계시지요? 희랍신화에 나오는 눈부신 미모의 청년 말입니다. 이 시는 물음과 추측의 형식으로 실연의 상처와 아픔을 그리고 있어요. 1연의 경우는 매우 간결한 형식의 질문으로, 이는 상대방을 염두에 둔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처지를 보여 주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연과 3연은 이렇게 발단된 시적 정서의 심화에 해당합니다. 4연은 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부분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문장 형식에서 추측성 진술로 바뀌며, ‘너에게 던지는 질문을 통한 나의 처지 드러내기에서 너에 대한 추측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5연은 시상을 마무리하는 연으로, ‘가 결합하는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


 

이 시는 시인이 헤어진 남자와의 사연을 마치 일기 쓰듯, 그것도 남들이 다 보라는 듯 정직하게 진술하고 있네요. 실연의 상처와 아픔을 남기고 떠난 남자를 아도니스에 비유했는데, 신화의 얼개와 구체적으로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다만 가장 완전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사랑을 받았고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아도니스이지만, 그를 항해 인생의 굴곡을 묻고 사랑의 허무를 확인하는 대목은 이해될만 합니다. 제아무리 돛대 같은 사랑이라도 바람에 갈대숲이 누울 때가 있고, ‘먹구름에 달무리가 질 때도 있기에 말입니다. 당신의 가슴에도 한 번쯤 휑한 바람이 불었겠지라며 단언하는데 왜 아니 그렇겠습니까요. ‘남자가 여자를 지나간 자리처럼 시리고 아픈 흔적은 사랑을 해본 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아픔이지요. 진정한 기쁨이 머리나 가슴이 아니라 몸으로 먼저 오는 것처럼, 짙은 사랑의 상처 역시 몸에 머물러 있습니다. ‘너의 몸 골목골목 너의 뼈 굽이굽이 상처가 호수처럼 괴어 있는것입니다. 나의 온몸 가득히 남겨진 사랑의 상처에는 짓무른 고름이 흐릅니다. 내가 이토록 괴로운데 아도니스 너도 마찬가지겠지?라고 동의를 구하며 마지막 애증을 표합니다. 아도니스, 나의 이마에 노을이 지는 것처럼, 너의 이마에도 언젠가 노을이 질 것임을 예견합니다. 한 꺼풀 벗기면 뼈와 살로만 수습되는 육신처럼 말입니다. 꽃이 피는 것은 오래 걸리지만, 꽃이 지는 건 아주 잠깐인 것처럼 말입니다.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인 것처럼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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