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delssohn / Piano Con. No. 1 Op. 25 (197)
- 서건석
- 2024.12.0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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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음악 감상자가 되기 위하여 ▣
3. 작곡가와 작품 알아보기(197)
197
♣ Mendelssohn / Piano Con. No. 1 Op. 25
♬ Felix Mendelssohn(1809~1847)는 19세기 고전주의의 마지막과 낭만주의의 시작을 잇는 가교로 평가받으며 탄생 200주년이 된 요즈음도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작곡가이자 지휘자이지요. 그 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하여 제목으로도 시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 지중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교향곡 4번 ‘이탈리아’>,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 오라토리오 <성 엘리야>, 몰아치는 폭풍을 수채화 톤으로 담아낸 <핑갈의 동굴> ‘서곡’, 천재성으로 가득 차 있는 <한여름 밤의 꿈>의 ‘서곡’과 ‘결혼 행진곡’ 등, 따스한 온기가 충만해 있는 가곡 ‘노래의 날개 위에’, 그리고 <현악 8중주> 등 멘델스존이 남긴 아름다운 멜로디는 앞으로도 우리의 귓가를 맴돌며 영원한 생명력을 지닐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7세에 세례를 받고 개혁파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음악적 천재로 인정받았지만, 그의 부모는 그의 재능을 활용하기에는 너무 신중했습니다. 그의 여동생 Fanny Mendelssohn은 비슷한 음악 교육을 받았으며 재능있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독일에서 멘델스존의 초기 성공은 특히 1829년 마태 수난곡 공연으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음악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작곡가, 지휘자 및 솔리스트로서 유럽 전역을 광범위하게 여행했습니다. 10번의 영국 방문은 그의 주요 작품이 초연된 기간 동안 그의 성인 경력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했습니다.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그의 음악적 취향은 그를 Franz Liszt, Richard Wagner, Charles Valentin Arkan 및 Hector Berlioz와 같은 모험적인 동시대 사람들과 차별화했습니다. 그가 설립한 라이프치히 음악원은 이러한 반급진적 사고의 보루가 되었습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변화하는 음악적 취향과 반유대주의는 오랜 시간 동안 상대적인 비난을 받은 후 그의 창조적 독창성을 재평가했습니다. 그는 이제 낭만주의 시대의 가장 유명한 작곡가 중 한 사람입니다.
멘델스존은 10대에 이미 5개의 협주곡을 작곡했습니다. 멘델스존은 이 협주곡들에서 18세기 후반, 19세기 초반의 형식적인 관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쓴 그의 협주곡들, 즉 출판된 그의 협주곡들에서 멘델스존은 고전주의 시대의 작곡가들의 관습을 철저하게 벗어나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협주곡으로는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두 곡과 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이 있습니다. 이 작품들에서 그는 독창적이고, 또한 후대에 영향력을 미치는 새로운 협주곡의 형식을 선보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 이미 완전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이 곡은 그가 2년간의 유럽 투어 기간 중에 뮌헨에서 작곡했습니다. 특히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매우 빠른 시간 안에 완성된 것으로 유명한데, 1830년 9월과 10월 사이에 쓰였습니다. 따라서 아마도 〈피아노 협주곡 1번〉이 풀어내고 있는 자유로움과 자발성은 이러한 단시간의 작곡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1번 협주곡은 멘델스존의 여러 협주곡 가운데 가장 먼저 출판된 작품으로, 화려한 기교와 낭만적 열기를 충분히 갖춘 전형적인 낭만주의 협주곡입니다. 1830년 이탈리아를 여행할 당시 이 작품을 쓰고자 마음먹었는데, 당시 교향곡 <종교개혁>을 발표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두는 바람에 작곡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해를 넘겨 1831년 10월에야 전곡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초연은 그해 10월 17일 멘델스존의 연주와 지휘로 뮌헨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곡은 당시 젊은 여류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높이고 있던 델피네 톤 샤우로트(Delphine von Schauroth, 1813~1887)에게 헌정되었는데, 그녀에 대한 로맨틱한 여운만이 숨어 있을 뿐 명확한 사랑의 증거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 멘델스존이 이루고자 했던 것은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협주곡들에서 쓰인 전통적인 3악장 협주곡과 베버의 피아노 협주곡, 슈포어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나타난 자유로운 구조를 하나로 엮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것과 혁신적인 것의 결합은 나중에 작곡되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멘델스존의 협주곡은 이 장르 전반에 걸쳐 19세기 내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멘델스존이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 선보인 것은 전통적인 3악장의 협주곡 구조를 그대로 취하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1악장에 구조적인 중심점을 두지 않고, 세 개의 악장을 길이 상 거의 같게 만들고, 이들을 하나의 끊이지 않는 흐름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또한 멘델스존은 고전 협주곡에서의 솔로와 투티 섹션 사이에 명확한 구분을 없앰으로써 각 악장 내에서의 흐름의 유동성을 높였습니다.
1악장은 매우 간결하고 고전주의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어딘가 잘려 나간 부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전통적인 오케스트라의 도입부는 이 곡에서 사라졌고, 아예 곡의 시작부터 솔리스트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등장합니다. 이 등장에서부터 솔리스트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이 곡의 아이디어들을 제시하고 발전시킵니다. 고전주의적인 기준에서 볼 때 카덴차와 같은 시작에서 솔리스트는 이 곡이 고전주의의 관습에서 벗어나게 될 것을 처음부터 예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1악장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소나타 형식의 발전부라고 부를 만한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재현부 역시 과감하게 압축되어 있지만 매우 강렬합니다. 1악장은 마치 기력을 쇠진한 사람처럼 점차 사그라지며 곡을 마칩니다.
멘델스존의 음악에는 풍부한 멜로디와 온화한 서정은 물론, 골짜기 시냇물 같은 청명함도 있습니다. 그중 청명함을 만끽하기 좋은 곡으로 22세에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전에 적어도 세 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지만 처음 출판한 협주곡이어서 1번이 됐습니다. 이 곡은 작은 손을 가진 소녀를 위한 풋사랑의 산물로 알려진 짧은 곡입니다. 하지만 세 악장을 이어 연주하기 때문에 한 편의 예쁘장한 드라마처럼 들립니다. 1악장은 단조임에도 풍성한 활력이 넘치고, 느린 2악장은 투명하게 맑으며, 3악장은 산양(山羊)의 질주를 보는 기분입니다. 낭만 시대 협주곡으로는 가벼운 편이어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편이었지만 요즘 듣기엔 매력 만점인 곡입니다.
유명한 멜로디와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인 내용, 풍부한 상상력과 재기 넘치는 유머로 두 세기를 넘어 음악 대중들을 매료시켜 온 멘델스존의 음악은 그 위상이 떨어진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고, 10대에 이미 거장으로 숭배받았으며, 요절한 이후에는 전설로 평가받았던 작곡가였던 만큼 모차르트에 비견할 수 있을 만한 유일무이한 신동이었습니다.
사춘기 무렵에 이미 천사로부터 엿들은 선율을 옮겨놓은 듯한 음악을 작곡했던 멘델스존은 20세기 초반 명지휘자들과 명작곡가들로부터 거의 신적인 존재로 대접받았습니다. 음악 외에도 승마를 비롯한 모든 스포츠, 언어, 역사, 수학, 천문학, 건축,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멘델스존은 동일한 천재성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바흐를 재발견한 지휘자 역할도 분명 무시할 수 없겠지만, 피아니스트이자 피아노 음악 작곡가로서의 멘델스존의 가치는 지금까지도 덜 조명받고 있습니다.
그의 최초의 음악적 스승은 풍부한 음악가적 기질을 가지고 있었던 어머니였습니다. 이후 7살 때부터 파리로 옮겨오면서 베토벤이 선호했던 피아니스트 마리 비고(Marie Bigot)로부터 레슨을 받았습니다. 이후 베를린으로 돌아온 뒤 각 분야의 탁월한 스승들로부터 작곡, 화성, 바이올린, 그리스어, 피아노를 배워 나갔습니다. 1818년 10월 28일, 9살의 멘델스존은 피아니스트로서 첫 공개 연주회를 가졌고. 1819년에는 아카데미에 입학했습니다. 이후 1821년 작곡가 카를 마리아 폰 베버와의 만남과 바이마르에서 괴테와의 만남을 가진 멘델스존은 일종의 내적 성숙을 경험할 수 있었고, 자신의 집에서 열었던 일요 음악회에서 보다 풍부한 감수성과 정교해진 테크닉으로 교향곡과 모테트, 피아노 작품, 가곡 등을 작곡, 연주, 지휘하며 독일 내의 모든 예술가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멘델스존은 이 무렵부터 자신의 악기였던 피아노를 위해 많은 수의 협주곡을 작곡했지만, 이러한 사실조차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베토벤의 것과 견줄 수 있을 만큼 자주 연주되고 널리 사랑받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지만, 유독 그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멘델스존의 신격화(神格化)가 되었던 20세기 초반에도 전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이는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탁월한 기법과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이들 협주곡에 멘델스존의 음악 정신이 담겨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주 레퍼토리는 물론 리코딩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Yuja Wang(p), Kurt Masur(cond)
Verbier Festival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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