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163) : 과일가게 앞에서 / 박재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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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163)

 

 

과일가게 앞에서 / 박재삼

 


사랑하는 사람아,

네 맑은 눈

고운 볼을

나는 오래 볼 수가 없다.

한정없이 말을 자꾸 걸어오는

그 수다를 나는 당할 수가 없다.

나이 들면 부끄러운 것,

네 살냄새에 홀려

살연애(戀愛)나 생각하는

그 죄를 그대로 지고 갈 수가 없다.

 

저 수박덩이처럼 그냥은

둥글 도리가 없고

저 참외처럼 그냥은

달콤할 도리가 없는,

이 복잡하고도 아픈 짐을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여기 부려놓고 갈까 한다.

 

 

 

나이를 먹노라면 시인처럼 밝고 맑은 삶에 대한 혜안(慧眼)이 생겨날까요? 집으로 들어가는 길모퉁이 과일집에 보기 좋게 진열된 과일을 보며, ‘저 수박덩이처럼 그냥은 / 둥글 도리가 없고 / 저 참외처럼 그냥은 / 달콤할 도리가 없는, / 이 복잡하고도 아픈 짐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리하여 그 짐을 거기에 벗어 두고 내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갈 수 있을까요? 그리하여 온전히 네 맑은 눈 / 고운 볼을오래도록 보고, 그리하여 그를 닮은 맑고 고운 이야기로 날을 밝히고, 그리하여 축복인 살연애를 생각하고, 그리하여 내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지금 내 사는 모양대로 살아간다면 과연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보기 좋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진정 나이 먹어간다는 게 무엇일까 새삼 생각해 보게 됩니다그려.

 

이 시의 서정적 자아 는 과일가게 앞에 서 있어요. 그는 갖가지 과일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의 맑은 눈고운 볼보다 살냄새에 홀려 / 살연애나 생각했던 자신을 떠올리지요.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은 수박이나 참외처럼 그냥 둥글 도리가 없고’, ‘달콤할 도리가 없는 부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이며, 자신은 그러한 죄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박이 둥근 것과 참외가 달콤한 것은 그냥그러하는 그것들의 속성이지요. 그러나 는 사랑하는 사람과 살연애하고 싶은 속셈을 품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자연스러움은 나이가 들면서 를 부끄럽게 만들고 사랑을 복잡하고도 아픈 짐으로 만듭니다. 결국 서정적 자아는 과일가게 앞에서 자신의 부끄럽고 죄스러운 부자연스러움을 버리고 과일들의 자연스러움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이 시에서 수박참외는 단순한 자연의 이미지를 넘어 인간이 본받아야 할 구체적인 자연의 모습인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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