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160) : 지는 잎 보면서 / 박재삼

단풍52.jpg



나의 애독시(160)

 

 

지는 잎 보면서 / 박재삼

 

 

초봄에 눈을 떴다가

한여름 뙤약볕에 숨이 차도록

빛나는 기쁨으로만 헐떡이던 것이

어느새 황금빛 눈물이 되어

발을 적시누나.

 

나뭇잎은 흙으로 돌아갈 때에야

더욱 경건하고 부끄러워하고,

사람들은 적막한 바람속에 서서야

비로소 아름답고 슬픈 것인가.

 

천지가 막막하고

미처 부를 사람이 없음이여!

이제 저 나뭇잎을

우리는 손짓하며 바라볼 수가 없다.

그저 숙이는 목고갯짓으로

목숨은 한풀 꺾여야 한다.

! 묵은 노래가 살아나야 한다.

 

 

새순 돋아 한여름 빛나는 초록빛으로 숨 쉬던 잎들이 정말 눈 깜짝할 사이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물들어, 사방이 온통 아름답고도 슬픈 모습으로 뭇사람들을 손짓해 불렀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단풍놀이로 야단이더니 금방 조락의 계절, 황금빛 눈물을 뿌리는 시기가 되었군요. 또 이내 부를 사람 없어지고, 바라볼 수 있는 나뭇잎이 없는 적막함이 가득해지면 대책 없이 다시 한 해가 사라지고 우리의 목숨도 한 해가 깎기겠지요. 지는 잎 바라보면 절기의 변화가 책 한 장 넘기는 순간과 흡사한 느낌 들어 마음 허허롭기 짝이 없습니다그려. 묵은 노래라도 살려내서 따뜻한 위안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다행이겠습니까요. ()

 

새 봄 여리디여린 순한 연록색 잎새로 삶을 시작하여, 한여름엔 짙푸르고 싱싱한 모습을 뽐내며 힘차게 생명 활동을 이어나가고, 가을이 되면 서서히 퇴색하여 메마른 낙엽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의 일생. 사람의 한평생도 이와 같지 않던가요. 새순처럼 순진무구하던 어린 시절, 꿈과 희망과 낭만, 열정이 넘쳐나던 젊은 시절, 왕성하게 활동하던 중장년 시절, 그리고 서서히 몸과 마음에 한계가 닥쳐오고, 몰려드는 그 한계를 인정하고 물러나기 시작하다 결국은 지고 마는 노년 시절. 나뭇잎은 해가 바뀌면 부활하여 재생의 기쁨을 누리는 운명이지만, 우리는 과연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법칙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재생할까요, 아니면 기독교에서 말하듯이 천국에 가서 영생을 누리거나 지옥에 가서 고통을 겪을까요. 이제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가을 나뭇잎을 보면서 삶에 대해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에 마냥 쓸쓸해집니다그려. 퇴색되어 낙엽이 되는 나뭇잎을 보면서 느끼는 건 생로병사의 필연적 과정을 겪는 우리들 인생의 단면일 수밖에 없어요. 이 시는 너무나 인간적인 삶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아름다운 시 한 편입니다. 생명을 가지는 모든 것들이 고통을 겪어야만 그 평안을 비로소 느낄 수 있듯 사람들은 저마다 크든 작든 아픔을 느껴본 후에야 비로소 지나온 길을 돌아 볼 줄 알게 됩니다. 자연의 순리를 통해 많은 배움을 찾는 인간의 삶, 떨어진 나뭇잎이 다시 자연의 밑거름으로 돌아가듯 밑거름이 되는 삶을 살아왔는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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