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861) : 오길 잘했다 / 이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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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861)

 

 

♬ 오길 잘했다 / 이상국

 

 

어느 날 저녁 동네 골목길을 지나다가 자즈러질 듯 우는 갓난애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아, 누군가 새로 왔구나

그리고 저것이 이제 나와 같은 별을 탔구나 하는 즐거움

 

상당히 이름이 나있는 시인의 시를 읽다가 야, 이 정도면…… 어쩌고 하는 이 희떠움

 

티브이 속에서 줄줄이 끌려가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을 향해

노골적으로 꼴좋다 꼴좋다 외치는 즐거움

 

아무 생각 없이 생을 두루마리 휴지처럼 풀어쓰다가

남 모르게 우주의 창고를 열어보는 이 든든함

 

때로 따뜻한 여자 속에서 내 그것이 죽어가는 즐거움

 

친구를 문상 가서 웃고 떠들다가 언젠가 저것들이 내 주검 앞에서 나를 흉보며

내 음식을 축내는 즐거움을 미리 보는 즐거움

 

어쩌다 공돈이 생긴 날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집에 가는데

나무 이파리들이 멋도 모르고 바람에 뒤집어지는 걸 바라보며

아무래도 세상에 오길 잘했다는 이 즐거움

 

 

◑ 이 시를 읽고 난 느낌이 어떻습니까요? 그냥 좋지요. 따로 설명할 필요 없이 그저 주루룩 읽어 내리면 자연 고개가 끄덕이게 되며 무릎 탁 치게 만드는 그런 시라고 여겨지지요? 읽으면 읽어 갈수록 머릿속만 복잡해지는 철학적 용어와 비슷한 말들을 잔뜩 늘어놓아 오리무중인데, 평론가들은 입을 모아 칭찬하는 난해한 시보다는 그냥 읽기만 해도 납득이 쉽게 되며 웃음까지 저절로 터져 나오는 시가 좋은 시라는 생각이 드는데, 위의 시가 바로 그런 시라고 여겨지지 않는지요? 그런데 어느 절(節)의 어느 표현이 맘에 듭니까요? ‘따뜻한 여자 속에서 내 그것이 죽어가는 즐거움’입니까 아니면 ‘언젠가 저것들이 내 주검 앞에서 나를 흉보며 / 내 음식을 축내는 즐거움을 미리 보는 즐거움’입니까요? 이것도 아니면 맨 끝 행인 ‘아무래도 세상에 오길 잘했다는 이 즐거움’입니까요?

 

◐ 이 별에 와서 이별만 기념하던 날들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끔씩 이런 시가 살만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소한 것에도 즐거움이 있고, 그 즐거움이 우주의 질서 안에 있습니다. 단순히 유희적인 측면에서 보는 시선이 아니라 태어남과 죽음을 객관화시키는 것에서 오는 직관이 이 시의 깊이입니다. 오길 잘했다, 매번 이런 생각이 호기심 많은 아이의 눈빛을 갖게 합니다. 그게 시인의 눈이 아닐까 싶어집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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