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858) : 11월 /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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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858)

 

 

♬ 11월 / 나희덕

 

 

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저 뜯어 달아난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

나무는 눈물 흘리며 감사한다

 

길가의 풀들을 더럽히며 빗줄기가 지나간다

희미한 햇살이라도 잠시 들면

거리마다 풀들이 상처를 널어 말리고 있다

 

낮도 저녁도 아닌 시간에,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에,

모든 것은 예고에 불과한 고통일 뿐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모든 것은 겨울을 이길 만한 눈동자들이다

 

 

◑ 왜 입동이 양력으로 11월에 있으며, 입춘이 2월에 있는지를 궁금하게 여겨본 적이 있는지요?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다고 하지만, 체온에 스치는 바람의 온도와 햇살의 농도를 잣대로 그 주관적 기준을 말하자면 때로는 9월도 여름이고 11월도 겨울이었던 해가 다반사였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가장 큰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였던 ‘사계절이 뚜렷하다’란 말이 두루뭉술해져 대체로 봄은 여름보다 짧았고, 겨울은 가을보다 더 길었던 세월을 견디며 살았던 것이지요. 그렇게 보면 11월은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이라 하는 편이 정답일 겁니다. 정말로 ‘모든 것은 예고에 불과한 고통’임을 잘 알게 만들어 주는 때이지요. 정든 한숨과 환멸의 힘만으로 건너가야 할 가을과 겨울 사이가 아닐까요. 내가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그래서 얻은 건 무엇이고 잃은 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군요. 덤으로 드린 다음 시에서처럼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이지요, 그렇지요? (펌)

 

◐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이 있습니다. 이 계절에 낙엽은 시들어 흩날리고 바람에 누운 풀들은 상처를 널어 말립니다. 낯익은 사람들도 하나둘 떠나가고 또 다른 이별을 예고하는 아픔만이 가슴을 채울 때, 우리는 낮도 저녁도 아닌 쓸쓸한 공허 속에서 벌거벗은 채 우두커니 서 있음을 느낍니다. 사람의 생에도 삶도 죽음도 아닌 시절이 있습니다. 시든 추억을 널어 말리며 혼자서 견뎌내야 하는 고독의 순간이 존재합니다. ‘겨울을 이길만한 눈동자’가 있다고는 하지만 스스로 눈을 부릅뜨지 않고서야 어찌 겨울을 이겨내겠는가요. 그때를 대비해 우리에게는 가을에서 겨울로 건너가는 시간을 응시하는 직관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차가운 무상함 속에서도 주고받는 따뜻한 시선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너무나 분명한 것은, 인생에도 ‘11월의 고통’이라는 씨앗이 심어져 따스한 봄이 우리 곁에 온다는 사실이지요.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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