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851) : 틈 / 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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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851)

 

 

♬ 틈 / 김기택

 

튼튼한 것 속에서 틈은 태어난다

서로 힘차게 껴안고 굳은 철근과 시멘트 속에도

숨 쉬고 돌아다닐 길은 있었던 것이다

길고 가는 한 줄 선 속에 빛을 우겨 넣고

버팅겨 허리를 펴는 틈

미세하게 벌어진 그 선의 폭을

수십 년의 시간, 분, 초로 나누어 본다

아아, 얼마나 느리게 그 틈은 벌어져 온 것인가

그 느리고 질긴 힘은

핏줄처럼 건물의 속속들이 뻗어 있다

서울, 거대한 빌딩의 정글 속에서

다리 없이 벽과 벽을 타고 다니며 우글거리고 있다

지금은 화려한 타일과 벽지로 덮여 있지만

새 타일과 벽지가 필요하거든

뜯어보라 두 눈으로 확인해보라

순식간에 구석구석으로 달아나 숨을

그러나 어느 구석에서든 천연덕스러운 꼬리가 보일

틈! 틈, 틈, 틈, 틈틈틈틈틈……

어떤 철벽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사는 이 틈의 정체는

사실은 한 줄기 가냘픈 허공이다

하릴없이 구름이나 풀잎의 등을 밀어주던

나약한 힘이다

이 힘이 어디에든 스미듯 들어가면

튼튼한 것들은 모두 금이 간다 갈라진다 무너진다

튼튼한 것들은 결국 없어지고

가냘프고 나약한 허공만 끝끝내 남는다

 

 

◑ 읽고 나니 느낌이 어떠합니까요? ‘틈’에 대한 이 정도의 관찰력이라면 혀를 내두를 정도가 아닐까요? 시인은 ‘틈’을 소멸의 공포와 생명력을 모두 나타내는 상징으로 봅니다. 견고한 빌딩의 입장에선 몸에 난 주름처럼 뻗어 가는 틈이 소멸을 떠올리게 하겠지만, 틈 속에 둥지를 튼 바람과 빛 입장에서는 우연히 날아든 풀씨 하나가 싹을 틔울지도 모를 생명의 기운으로 다가옵니다. 사람들은 화려한 타일과 벽지로 소멸을 감춰 보려고 하지만 시인은 ‘어떤 철벽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사는 이 틈의 정체는 / 사실은 한 줄기 가냘픈 허공이다’라고 합니다. 결국 모든 것은 사라지고 허공만이 남게 되는데, 우리를 둘러싼 이 인간적 조건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지요. 왜냐면 우리의 몸 또한 무수한 틈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튼튼한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결국 저 허공 속으로 사라질 겁니다. 애써 살아온 인생인데, 어찌 보면 허무하지만, 이 허무함이야말로 나를 살아 버티게 하는 힘이지요. 우리 각자는 이 세상을 이루는 하나의 틈이고 숨구멍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사라져 가는 순간순간을 더 간절하고 눈부시게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펌)

 

◑ 우리는 평소 틈을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틈은 메꿔야 하고 가려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 틈은 벌어지고 벌어져, 결국 나약한 허공만 남는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단단해도 허공에 무너진다고 말합니다. 즉 아무리 메꾸고 메꾸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지요. 시에서 말하듯 틈은 어떤 것에도 필연적인, 당연한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생각해 보면 ‘빈틈없는 사람’이라는 말은 칭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적이지 않다’라는 느낌이 풍깁니다. 그래서 평소 완벽해 보이던 연예인이 무언가 어설픈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그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구나.’라고 말하며 친근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듯 틈은 필연적으로 모두에게 존재하는 것이기에 곧 인간적인 것으로 다가옵니다. 사람은 결국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틈은 사람다운 사람으로 숨을 쉬게 해주는 ‘숨구멍’과 같은 공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틈을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시의 구절처럼 ‘무너지지 않는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무리 단단해지려고 해도 틈은 태어납니다. 그러므로 틈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기보다는 그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틈은 우리에게 인간으로 숨을 쉬게 하는 공간으로 느끼고,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만드는 여백의 미로 만들어내도록 합시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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