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850) : 아파트가 운다 / 최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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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850)

 

 

♬ 아파트가 운다 / 최금진

 

 

가난한 사람들의 아파트엔 싸움이 많다

건너뛰면 가닿을 것 같은 집집마다

형광등 눈 밑이 검고 핼쑥하다

누군가는 죽여달라고 외쳤고 또 누구는 실제로 칼로 목을 긋기도 한다

밤이면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유체 이탈한 영혼들처럼 기다란 복도에 나와

열대야 속에 멍하니 앉아 있다

여자들은 남자처럼 힘이 세어지고 눈빛에선 쇳소리가 울린다

대개는 이유도 없는 적개심으로 술을 마시고

까닭도 없이 제 마누라와 애들을 팬다

아침에 보면 십팔, 십팔 평 칸칸의 집들이 밤새 욕설처럼 뱉어낸

악몽을 열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

운명도 팔자도 모르는 아파트 화단의 꽃들은 표정이 없다

동네를 떠나는 이들은 정해져 있다

전보다 조금 더 살림을 말아먹은 아내와

그들을 자식으로 두고 죽은 노인들이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교과서를 족보 책처럼 싸 짊어지고 아이들이 돌아오면

아파트는 서서히 눈에 불을 켠다

이빨이 가려운 잡견처럼 무언가를 갉아먹고 싶은 아이들을 곁에 세워놓고

잘사는 법과 싸움의 엉성한 방어 자세를 가르치는 젊은 부부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

밤이면 아파트가 울고, 울음소리는

근처 으슥한 공원으로 기어나가 흉흉한 소문들을 갈기처럼 세우고 돌아온다

새벽까지 으르렁거린다

십팔, 십팔 평 임대 아파트에 평생을 건 사람들을 품고

아파트가 앓는다, 아파트가 운다

아프다고 콘크리트 벽을 쾅쾅 주먹으로 머리로 받으면서 사람들이 운다

 

 

◑ 시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통념을 확 깨는 시입니다. 누군들 능력 있고 자상한 가장이고 싶지 않았을까요? ‘눈 밑이 검고 핼쑥하다’라는 함축적 의미 속에 가난과 고독감이, 왜 하필이면 십팔 평인가요? 이 중의적 표현 속에는 욕설을 배설하는 카타르시스가, ‘운명도 팔자도 모르는 화단의 꽃들은 표정이 없다’라는 반어(아이러니) 속에서 냉소적 슬픔이 전해옵니다. 반어적 표현 속에서는 숨겨진 의미를 끊임없이 캐내야 합니다. 최금진 시의 냉소는 우리 사회의 아픈 폐부를 들춰내 공격하며, 거친 숨을 내뿜는 직설적 언어로 현실을 환기하는 그로테스크한 미학이 묻어납니다. 인간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면 그 존재를 품어 안는 것이 바로 집입니다. 집에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되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사는 아파트는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요?

 

◑ 18평 임대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적나라한 일상의 세세한 모습들을 아프게 느끼게 하는 시입니다. 누군가의 말대로 집은 교환가치에 따라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시대에 구별 짓기가 이루어지는 소외의 현장입니다그려.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가진 계급에 의해 경제적 불가촉천민의 삶을 수락할 수밖에 없으니, 이러한 삶 속에서 가난은 수치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수치를 벗어나기 위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잘 사는 법과 싸움의 기술’을 전수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소외의 내면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난에서 청빈의 삶을 읽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 버렸을까요. 어쩌면 시인은 고통스러워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짓찧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이 시에서 집은 우리 시대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자신이 거주하는 ‘지금, 여기’의 처소가 주는 행복감을 망각한 채 조금 더 넓은 평수로 옮기기 위해 아등바등 살고 있을 사람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는 듯합니다. 짓느니 아파트뿐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모습은 늘어갈 것이니 걱정스럽고 답답할 뿐입니다. 더 많이 짓는다고 해서 그것들이 우리 내면을 풍요롭게 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더 편하고 더 윤택해졌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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