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844) : 가정 / 박목월


가정1.jpg


나의 애독시(844)

 

 

♬ 가정 /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반(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가족에 대한 책임감에 눌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가장의 가슴에도 자식에 대한 사랑만큼은 밝고 따뜻합니다. 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길은 언제나 ‘눈과 얼음의 길’이어서 힘듭니다.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당도한 문간에서 올망졸망한 신발 아홉 켤레를 보며 자녀들과 가정을 굳게 지켜나가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눈, 얼음, 연민, 굴욕, 굶주림, 추위’ 등 힘겨운 현실을 드러내는 부정적 이미지의 시어와 ‘귀염둥아, 미소, 강아지’ 등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가득 드러나는 시어가 교차하면서 생계를 겨우 유지해 가는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 그리고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자식에 대한 애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어설프고 후줄근한 자신을 연민하지만 식솔들에겐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싶어 하지 않는군요. 숨어서 미소하며 희망을 가져 봅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심정이고 그 시대 아버지의 권위였지요. 가난한 삶에 지친 아비와 귀여운 자식을 사랑하는 아비의 대조에서 화자의 무한한 사랑을 느끼면서도 어딘지 서글픈 정감에 젖게 되지요. 5~6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대개 그때의 남루함과 가족 사랑을 떠올리며 유년의 모습을 연상할 것입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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