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843) : 자화상 / 윤동주


자화상.jpg


나의 애독시(843)

 

 

♬ 자화상 /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 ‘가만히’ 들여다보는 행위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지요. 우물 속은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는 매우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여기서 화자는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지만, 초라한 모습이 미워져서 우물을 떠납니다. 그러나 돌아가다가 생각하니 이러한 자신이 가엾어집니다. 일종의 자기 연민(憐憫)이겠지요. 그래서 다시 가서 들여다보고, 다시 ‘미워져’ 돌아가다가 ‘그리워져’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자신에게 느낀 미움은 연민으로 연민은 그리움으로 변하지요. 순수하게 살던 옛날 모습, 또는 이상으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그리워진다는 것으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반성하고 내면을 응시하는 가운데 일어난 감정일 겁니다. 그래서 사나이는 어쩔 수 없이 미움과 연민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자기반성과 자기 관조의 자세를 보여 주고 있는 시입니다.

 

◑ 서술체 형식으로 자신을 하늘과 바람으로 객체화하여 내면 공간의 깊이를 형성합니다. 소년에서 성년으로 가는 시인의 전환적 모습을 보여주는 자기 인식의 시라 할 수 있습니다. 각 연의 내용은 시인의 내면 의식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우물로 찾아가 들여다 봄(1연)-사나이의 존재, 미움, 돌아감(3연)-돌아감, 가엾음, 도로 감(4연)-미움, 그리움(5연)의 반복적 진행은 시인의 자기연민과 비극적 현실 인식을 함축합니다. 이러한 관조의 경지와 고독의 고통스런 인식은 2연과 6연에 묘사된 우물 속 서경적 배경을 통해 강화됩니다. 우물 속에 비친 달과 구름, 하늘과 바람과 가을의 조화를 깨뜨리는 ‘사나이’는 분명 추억처럼 서 있는 시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세 차례 우물로 찾아갑니다. 그와 함께 미움, 가엾음, 그리움의 세 가지 감정적 변화가 동반합니다. 우물로 찾아감 즉 1연과 4연과 5연에서 자아 성찰이 이루어집니다. 성찰의 진행은 점층적으로 강화되지요. 미움(3연)에서 가엾음(4연)으로 그리고 이 양가적 감정의 혼재로 5연에서 미움과 그리움이 동시에 나타납니다. 이때 시인이 찾아가는 공간 우물은 ‘산모퉁이 외딴’ 곳에 있습니다. 이 분리된 장소에서 시인은 ‘가만히’ 응시하는 은밀한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우물 속 세상은 밝고 평화롭습니다. 그에 반해 시인의 내면은 어둠으로 채색되어 있습니다. 우물은 비일상적, 비현실적인 장소입니다. 그처럼 시인이 존재하는 현실은 고통과 불화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우물 속의 자연과 추억처럼 서 있는 사나이의 부조화는 현실과 시적 자아와의 갈등과 부조화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 바탕에는 시인의 비극적 현실 인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통해 비극적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적 행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두운 한 시대를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윤리의식입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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