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815) :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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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815)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 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였으면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 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였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 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였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였음 좋겠어

 

이 세상 어느 한 계절 화사하게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을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 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였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였음 좋겠어


 

사람들은 왜 화려한 아름다움에 대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낄까요? 불안 때문일 겁니다. 화려하게 아름다운 것을 쟁취하려면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쳐야 하지요. 구절초에 애틋하게 마음을 주는 것은, 많고 흔한 그 꽃에 정을 주는 까닭은, 쓸쓸하게 낮은 곳에 무리 지어 피어 있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다른 어느 꽃보다 청결하고 명징하며 순정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 아는 당신의 아름다움, 깊이 감추어 놓고 싶은 독점적인 사람의 욕망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의 순하고 깊은 정에 그리 이끌리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사랑한다는 명분 이면에는 늘 독점의 욕망이 강력하게 도사리고 있는 법이라는 걸 알고 계시지요.

 

내가 사랑하는 당신에게 바라는 마음을 잔잔하게 노래한 시입니다. 물오리 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처럼 평화롭고 편안한 시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황금빛 노을처럼 화려하거나, 만월처럼 너무 환한 모습이 아닙니다.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고 가득 차지 않은 달빛으로 빈 논길을 쓰다듬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습니다.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가고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르고 싶습니다. 그 강물은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 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습니다. 이처럼 소박한 삶 속에서 당신에게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서정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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