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814) : 모슬포에서 / 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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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814)

 

 

모슬포에서 / 김영남

 

 

오래도록 그리워할 이별 있다면

모슬포 같은 서글픈 이름으로 간직하리.

떠날 때 슬퍼지는 제주도의 작은 포구, 모슬포.

--을 하고 뱃고동처럼 길게 발음하면

자꾸만 몹쓸 여자란 말이 떠오르고,

비 내리는 모슬포 가을밤도 생각이 나겠네.

 

그러나 다시 만나 사랑할 게 있다면

나는 여자를 만나는 대신

모슬포 풍경을 만나 오래도록 사랑하겠네.

사랑의 끝이란 아득한 낭떠러지를 가져오고

저렇게 숭숭 뚫린 구멍이 가슴에 생긴다는 걸

여기 방목하는 조랑말처럼 고개 끄덕이며 살겠네.

살면서, 떠나간 여잘 그리워하는 건

마라도 같은 섬 하나 아프게 거느리게 된다는 걸

온몸 뒤집는 저 파도처럼 넓고 깊게 깨달으며

늙어가겠네. 창밖의 비바람과 함께할 사람 없어

더욱 서글퍼지는 이 모슬포의 작은 찻집, ‘()’에서.

 

 

떠나간 여자를 그리워하는 건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유야 어떻든 떠나가게 한 것은 본인이 잘못 살았다는 거지요. 절망의 눈물 속에서 떠나간 여자의 발자국 소리는 가슴에 징으로 와 박힙니다. 비바람을 함께 헤쳐 나갈 사람을 만난다는 건 행운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모슬포의 작은 찻집 ()’에서 자신이 살아온 발걸음을 돌아보며 아파하면서도 다시 사랑하게 된다면 여자를 사랑하지 않고 풍경을 오래도록 사랑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순간순간 바뀌는 것이지만 풍경은 쉽게 바꾸지 않기에 끝이 보이는 사랑보다 오래 지속되는 사랑을 하겠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떠나간 여자로 인해 자신의 삶이 얼마나 괴롭고 아픈지를 알만 합니다요.

 

이런 몹쓸 짓이 또 있을까요. ‘사랑의 또 다른 이름 이별’. 몹쓸, 몹쓰을, ­­그러면서 다시 또 그리워지는. 떠나보낸다고 정말 떠나보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애당초 사랑이 아니겠지요. 닿을 수 없는 마음, 둥 둥 둥 늘 섬처럼 떠다니기만 하는.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은 떠나간 사람이 그리워지는 날이 있겠지요. 그때는 이 에서처럼 저 모슬포 바다를 한 번 찾아가 볼 일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느껴볼 일입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바다가 왜 저렇듯 쉴 새 없이 온몸을 뒤집는지를. 겨울에 제주의 서쪽 끝 모슬포에 가면 알게 되리라. 왜 그곳이 모슬포인지, 왜 제주 사람들은 그곳을 와전된 음으로 못살포라고 부르는지. 온 섬을 다 덮을 듯이 서쪽에서부터 불어온 먼지바람이 그리움보다 긴 사구(砂丘)를 만들면 비로소 모슬포라는 이름을 실감하게 되리라. 하지만 그렇게 황량한 바람이 소리쳐 불던 겨울을 건너, 다사로운 봄의 입김이 남태평양을 그 긴 혀로 핥으며 다가오는 이른 봄날, 송악산 언덕에서 새싹을 뜯는 조랑말의 등에 내리 붇는 봄 햇살. 없는 그리움이라도 만들어 그곳에 가서 식은 커피라도 한잔 하고 올 일입니다. 없는 여자라도 만들어 옆자리에 태우고 산방산이 보이는 모슬포 해안도로를 한 바퀴 돌고 올 일입니다. 자판기에서 종이컵에 커피를 받아 들고 송악산 바닷가로 내려가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셔버린 다음, 파아란 모슬포의 바닷물에 그리움을 헹구고 돌아올 일입니다. 문득 늙어가는 옛날의 한 여인을 떠올리며 모슬포 바닷가의 굽은 길을 돌아볼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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