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807) : 벼 / 이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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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807)

 

 

/ 이성부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 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이 시는 를 통해 하나 되는 공동체 의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햇살 따가워질수록스스로를 아껴 고난을 이겨내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길 줄 아는 겸손한 자세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가 홀로 설 때는 연약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을 때는 큰 힘을 내서 더 튼튼해진 백성들이 됩니다. 벼는 아무 죄도 없이 죄지은 것처럼 숨죽이며 살아왔습니다. 그렇지만 힘이 강해질 때면 그들은 바람에 흔들려 춤을 추며 세상을 향해 강렬한 저항의 불길을 일으키기도 하고, 자신들이 떠나야 할 때엔 소리 없이 떠날 줄도 알고 있습니다. 맑은 하늘을 보며 서러움을 달랠 줄도 알고, 시련이 닥쳐올 때면 노여움을 삭일 줄도 압니다.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지만, 그들은 무엇보다도 불의의 사회 현실에 저항할 줄 아는, ‘더운 가슴이 용솟음치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벼는 피 흘리며 베어지지만, 자기희생을 통해 이룩한 넓디넓은 사랑에 만족하며 조용히 쓰러지고 맙니다. 쓰러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벼는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쓰러짐과 다시 일어섬을 통해 우리 인간의 삶이 이어왔음을 벼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아픔을 위로하며 어울려 살 때, 더 큰 사랑의 힘을 만들어 역사의 주체로 일어설 수 있는 것이지요. 벼를 얼마나 오랫동안 들어다봐야 이런 시상을 얻게 되는 것일까요? ()

 

이 시는 흔히 참여시로 일컬어집니다. 왜곡된 현실에 대한 분노와 그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민중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의 감정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의 시 속에는 현실의 왜곡된 모습과 기나긴 역사 과정 속에서 지배 세력들에게 가혹하게 짓밟히고 고통당한 사람들의 삶을 껴안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타인의 삶을 억압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역사적 현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시는 거기서 머물지 않고 억압과 소외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민중들의 모습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담고 있습니다. 쌀을 중심으로 한 농경민족의 역사에서 억압과 수탈은 벼를 대상으로 행해졌습니다. 이 시의 배면에는 벼와 같이 자기 희생과 노여움 속에서 언제나 다시 일어서는 백성들의 힘을 말하고자 합니다. 서러움을 맑게 다스릴 줄 아는 벼와 노여움을 덮을 줄 아는 벼, 그리고 피 묻은 그리움을 달래면서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자기 희생의 벼를 통해서 우리는 말없는 백성들의 넉넉한 힘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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