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797) : 가을 / 김현승


갈대3.jpg



나의 애독시(797)

 

가을 / 김현승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까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寶石)을 만든다.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서

네 노래를 고르더니

가을은 네 노래를 헤치고

내 언어의 뼈마디를

이 고요한 밤에 고른다.

 

 

 

이 시는 봄과 가을의 다양한 이미지의 대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지요. 1연에서 봄을 비유하고 있는 것은 숨결입니다. 숨결은 얼어붙은 채 잠들어 있는 공간에 따뜻함을 불어넣어 주는 기운을 뜻합니다. 2연의 차가운 물결은 봄의 숨결과 대조를 이루는 이미지로서 대지를 다시 엄동설한의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을 뜻하며 화자의 지향성이 지상에서 천상으로, 육체에서 정신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3연은 별의 이미지입니다. 봄이 꽃으로써 빛날 때라면, 가을은 하늘의 별을 깎고 다듬어 마음에 보석을 만드는 때이지요. , 봄이 육체를 성장시키는 때라면, 가을은 사색 속에 영혼을 성숙시키는 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4연의 눈동자 먼 봄이란 봄이 사람들을 지상적이고 육체적인 것에 쉽사리 눈멀게 한다는 뜻이고, ‘입술을 다문 가을은 자아 성숙을 위해 스스로 침묵 속에 깃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5연에서 봄이 언어로 불린 노래라면, 각성의 계절인 가을은 노래에서 골라낸 언어의 뼈마디에 해당됩니다. ‘언어의 뼈마디는 보석처럼 단단한 사색의 핵심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

 

 

이 시는 봄과 가을이 주는 서로 다른 정서, 즉 봄의 화사하고, 화려한 순간적인 이미지와 가을의 차갑고, 과묵하고, 사려 깊은 이미지를 대비시켜 삶의 자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아름답고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서 추상적인 시간 의식을 구체화함으로써 대비 방식이 지니는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그의 시가 수용하는 자연은 흔히 동화와 순응이라는 의미로의 동양적 자연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을 통해 변형시킨 자연으로 자신의 지향 의식을 밝히는 데 사용하고 있지요. 그러므로 이 시에서의 가을도 단순히 소멸의 시간이 아닌, 사물의 본질을 인식하고 존재의 한계를 극복하는 시간으로 그리고 있습니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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