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756) : 너에게 쓴다 / 천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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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756)

 

 

너에게 쓴다 / 천양희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고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 하나 먼저 다 닳았다.

 

꽃 진 자리에 잎 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내 일생이 되었다.

마침내는 내 생() 풍화되었다.

 

 

 

시방 우리는 문자와 사진들이 빛의 속도로 전송되어 태평양을 넘나드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엽신을 보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군요.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그립습니다. 따스한 마음을 담아 붉은 우체통에 넣어본 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꽃 진 자리에 잎 피었다라고 쓴 엽신을 받고 싶습니다. ‘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라고 쓴 엽신 한 장 보내고 싶습니다. 아직도 꽃 진 자리를 지키는 잡초들에게, 잎 진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뿌리에게. 오래된 만년필로 한땀 한땀 근황을 담아 그립습니다라고 쓰인 엽신 한 장을 부쳐보면 어떨까요. 젊은 연인 사이가 아니라도 애틋한 사랑이 번져나갈 겁니다. 마침내 우리들의 생이 완전히 풍화되기 전에 그렇게 한번 해보시지요. 그렇게 하긴 휴대전화에 때문에 이미 글러 버렸지요? ()

 

설레는 일은 인간을 푸르르게 하지요. 설렘이 있는 한 사람은 시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설렘의 마력, 설렘은 물감으로 한지를 물들이듯이 사람의 마음을 달보드레하게 채색해 줍니다. 새싹 오르듯 푸릇푸릇하게, 노랑 병아리 털처럼 보드랍게, 초록의 비단결처럼 황홀하게 스며듭니다. 분홍 바람으로 발그레 불어오는 설렘. 꽃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는 일은 설레는 일입니다. 꽃이 졌다고 너에게 쓰는 일도 설렘이 주는 일입니다. 소소한 일상이 너를 생각하면 의미를 띠게 됩니다. 꽃이 핀 것도 너와 나 사이의 연결고리인 것 같고 꽃이 진 것도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마무리인 것만 같고. 꽃 진 자리에 잎이 피었다고 너에게 쓰는 일, 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고 너에게 쓰는 일도 가슴이 콩닥콩닥 두근두근 뛰는 일입니다. 그래서 설렘이 없는 사람은 빨리 늙어요. 감흥이 없어서 건조하해집니다. 메마른 주름만 남아요. 세상 온갖 것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기에 그저 사는 일이 살아 있는 일이 되게 하는 촉촉함인 걸 알지 못합니다. 설렌다는 말, 흔들림에 마음을 맡기지만 내 마음의 항아리를 찰랑이게 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말입니다. 나의 일생이 되게 하는 너. 길이 되게 하는 너를 생각하는 마음. 설렘, 내가 풍화가 되는 날까지 라일락 향기로 남을 수 있게 하는 설렘을 간직해야 합니다, 사는 날까지 푸르를 수 있도록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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