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674) : 꽃 지는 저녁 /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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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674)

 

 

꽃 지는 저녁 / 정호승

 

 

꽃이 진다고 아예 다 지나

꽃이 진다고 전화도 없나

꽃이 저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지는 꽃의 마음을 아는 이가

꽃이 진다고 저만 외롭나

꽃이 저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꽃 지는 저녁에는 배도 고파라

 

 

배가 고플 때 우리는 투정을 하지요. 투정이란 사실보다 뜨거워진 감정 표현이라고 합니다. 군데군데 박혀 있는 아예’, ‘전화도’, ‘잊은 적’, ‘저만’, ‘배도등과 같은 한 치의 여백도 없는 단정적 표현들을 주목해 보시지요. 그들은 사실을 부추기고 감정을 달구는 말입니다. 하지만 투정은 반드시 남을 탓하는 원망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므로 전화도 없나에서 보이는 투덜거림은 말 그대로 무정한 당신을 탓해서가 아니고,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라고 되풀이 말하는 것은 결코 억울해서가 아닙니다. 당신과 나는 똑같이 외롭다는 것, 그래서 꽃 지는 저녁에도 당신이 그립다는 것. 그런 그리움에 허기지면 배도 고파지는 모양이지요. 그러나 이 배고픔은 틀림없이 정신의 허기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어제 아침 비에 피었던 꽃이 오늘 저녁 바람에 우수수 떨어집니다. 피는 데는 오래 걸려도 지는 데는 금방인 봄꽃. 붉디붉은 그 잎들을 보며 지는 꽃의 마음을 아는 이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심하게 토라져 있습니다. 꽃이 진다고 아예 다 지는 것도 아니고 세상 모든 게 끝난 것도 아닌데 꽃이 진다고 저만 외롭나아무리 그래도 나는 너를 잊는 적 없는데. 김용택 시인은 아름다운 사랑도 아름다운 이별도 없는 삭막한 시절, 메말라가는 가슴을 적시는 이 시가 나를 헉, 허리 꺾이게 한다라고 했는데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저 깊은 어느 그리운 곳에서부터 배고파 오는, 이 허리 꺾이는 허기와 솟아나는 눈물이 곧 한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꽃과 시는 지독한 외로움과 간절한 그리움, 절실한 결핍 속에서 솟아나는 맑은 샘물이라고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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