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621) : 허구한 날 지나간 날 / 강연호


새해첫날2.jpg




나의 애독시(621)

 

 

허구한 날 지나간 날 / 강연호

 

1

아무도 오지 않는다 허구한 날 내 마음의 공터에는

혼자 놀다 심심해진 햇살 곰곰한 생각에 지쳐 그늘 키우고

기다리는 일 많으면 사람 버리기 십상이라며

귓바퀴에 잠시 머물던 바람결 총총히 사라진다

저 햇살 저 바람도 저녁이면 돌아갈 집이 있는가

고개 갸우뚱하면 침착하게 낙법을 연습하던 나뭇잎 몇 장

내일 또 오마는 약속처럼 어깨에 얹힌다 삶이란

이런 거다 건너편 아파트 베란다에 널렸다 걷히면서

다시 더러워질 결심을 바투 여미는 흰 빨래의 반짝임 같은

 

세월아, 갈기갈기 찢기고 늘어진

하품에 지쳐 나는 너에게 줄 그리움이 없는데

너는 손 벌리고 자꾸만 손 벌리고

 

2

사진틀 속에 흑백으로 갇힌 날들이 파닥거린다

더러 지나간 날들이 예쁘게 이마 짚어주지만

아무리 기억의 초인종을 신나게 눌러도

그때, 그 들길, 첫 입맞춤

풀잎 풀잎 풀잎, 서걱서걱 서투르다며 흉보던 날들은

이제 더 이상 여기에 살지 않는다

텅 빈 우편함에는 수취인 불명의 먼지 쌓여갈 뿐

 

내 한 번도 같이 놀자고 한 적 없는

세월아, 내가 언제 숨바꼭질하자 했니?

그것도 모자라서 세월아

왜 나만 술래 되어야 하니?

 

 

누구나 한때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의 느낌으로 가슴 설레며 살아갑니다. 가슴 깊이 비밀처럼 묻어둔 사랑을 꺼낼 때마다 가슴 벅찬 추억들이 흩날리거나 때로는 아픈 슬픔이 아련하게 밀려온다 해도 그 잊을 수 없는 사랑에 기대어 우리는 살아가면서 반추합니다. 우리가 운명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만남과 헤어짐, 그 가슴 서늘한 기억들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입니다. 이 시에 나오는 첫 입맞춤의 기억도 이렇게 그녀와의 몫으로 운명처럼 남았습니다. 연애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글귀가 있습니다. ‘여자는 누구나 무언가 정신 나간 구석을 지니고 있고, 남자는 누구나 무언가 우스꽝스러운 구석을 지니고 있다.’ 그녀의 정신 나감과 내 우스꽝스러움이 결합한 처음의 경험, 그것이 이 시를 낳게 해주었고 지나간 세월에 대한 쓸쓸한 추억을 되살리려고 해도 난 세월의 술래로 남을 뿐입니다. 그녀는 이제 내 곁에 없지만, 세상의 어떤 不在는 그 부재에 대한 흐린 기억으로서도 충분히 그 존재를 증명하는 거지요. 그 부재의 존재를 지금, 간신히, 기억할 뿐입니다. ()





게시글이 어떠셨나요?



다른 이모티콘을 한번 더 클릭하시면 수정됩니다.

2,939개의 글

글 번호제목작성자작성일조회
2939서건석26.03.1413
2938서건석26.03.1313
2937모하비26.03.1229
2936서건석26.03.1213
2935서건석26.03.1118
2934서건석26.03.1018
2933서건석26.03.0917
2932서건석26.03.0818
2931서건석26.03.0719
2930서건석26.03.0621
2929서건석26.03.0520
2928서건석26.03.0420
2927서건석26.03.0334
2926서건석26.03.0220
2925서건석26.03.0125
2924서건석26.03.0123
2923서건석26.02.2830
2922서건석26.02.2820
2921편영범26.02.2838
2920편영범26.02.2839
2919서건석26.02.2547
2918서건석26.02.2432
2917서건석26.02.2323
2916모하비26.02.2244
2915서건석26.02.2226
2914서건석26.02.2126
2913서건석26.02.2024
2912서건석26.02.1926
2911서건석26.02.1828
2910서건석26.02.1734
2909모하비26.02.1640
2908서건석26.02.1639
2907서건석26.02.1525
2906서건석26.02.1427
2905서건석26.02.1327
2904서건석26.02.1233
2903서건석26.02.1142
2902서건석26.02.1033
2901모하비26.02.0948
2900서건석26.02.0950
2899서건석26.02.0829
2898서건석26.02.0738
2897서건석26.02.0625
2896서건석26.02.0534
2895서건석26.02.0429
2894서건석26.02.0337
2893모하비26.02.0249
2892서건석26.02.0239
2891서건석26.02.0128
2890편영범26.01.3156
2889편영범26.01.3165
2888서건석26.01.3129
2887서건석26.01.3033
2886서건석26.01.2934
2885서건석26.01.2836
2884서건석26.01.2731
2883모하비26.01.2666
2882서건석26.01.2634
2881서건석26.01.2532
2880서건석26.01.2426
2879서건석26.01.2330
2878서건석26.01.2237
2877서건석26.01.2142
2876서건석26.01.2032
2875모하비26.01.1976
2874서건석26.01.1934
2873서건석26.01.1831
2872서건석26.01.1734
2871서건석26.01.1632
2870박인양26.01.1579
2869편영범26.01.1569
2868편영범26.01.1582
2867서건석26.01.1544
2866서건석26.01.1445
2865서건석26.01.1341
2864모하비26.01.1274
2863서건석26.01.1263
2862서건석26.01.1166
2861서건석26.01.1043
2860서건석26.01.0944
2859서건석26.01.0841
2858서건석26.01.0746
2857서건석26.01.0636
2856모하비26.01.0576
2855서건석26.01.0551
2854서건석26.01.0451
2853서건석26.01.0351
2852서건석26.01.0270
2851서건석26.01.0243
2850서건석25.12.3155
2849서건석25.12.3049
2848모하비25.12.2943
2847서건석25.12.2936
2846서건석25.12.2847
2845편영범25.12.2763
2844편영범25.12.2765
2843서건석25.12.2758
2842서건석25.12.2663
2841서건석25.12.2557
2840서건석25.12.2549
화살표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