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610) : 완행열차 / 허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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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610)

 

 

완행열차 / 허영자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

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

하마터면 모를 뻔하였지

 

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

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

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거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

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나이가 들수록 그 옛날의 완행열차가 그리워집니다. 느리고 지저분하고 시간을 잘 안 지키기는 했지만 반면에 따스하고 인간적이고 낭만적이었지요. 도대체 빨리 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남보다 앞서가고 또 무언가 빠른 성취를 한다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겁니까요? 그보다는 드러나지 않는 일상의 작은 행복들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게 아닐까요? 산길에서 만난 작은 꽃 한 송이, 미소 띤 동료의 얼굴, 가족과의 따스한 저녁 식탁, 무심히 바라보던 저녁노을 등 자잘한 행복들은 우리 곁에 널려 있습니다. 인생의 끝에 다가갈수록 감사하고 아름답게 추억되며 나를 풍요롭게 해주는 건 그런 사소한 것들이라고 여겨집니다그려. 온통 스피드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 되어서 얼마나 빠르게 정보를 이해하고 얻느냐가 성공적인 삶과 직결되어 있다고 공공연히 말합니다. 따라서 진행 과정은 무시되고 결과만이 인정받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어 한심하고 안타까울 뿐이지요. 안 그렇습니까요?

 

놓친 것이 잘된 일이란 인식은 역설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놓아주어야 얻는 것이 있고, 멈추어야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고난이 그 사람을 성숙하게 합니다. 역설의 진리에 눈뜨게 되면 무엇이 이익이고 손해인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에 대한 구별이 달갑지 않습니다. 분별은 자칫 편견이나 독선으로 치닫기 쉽습니다. 이 시의 완행열차는 현상의 진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역설로서,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라는 깨달음을 줍니다. 누구나 빨리 쉽게 목적지에 가닿기를 바라지만, 빠르고 쉬운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천천히 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가는 과정이야말로 서두름 없어 쾌적하고도 충실한 인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서러운 종착역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음을 온몸과 영혼으로 보게 됩니다. 하여 완행은 뒤처진 속도가 아니라 아름다움이 충만한 세계 속으로 스며듦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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