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98) :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연꽃.jpg




나의 애독시(598)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하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쓸데없는 것에 부질없이 집착하거나 허욕은 부리는 경우가 많지요. 또 지나친 욕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체면을 구기는 경우도 있구요. 기대하는 마음과 소망하는 바가 크면 클수록 고통과 고민이 커지고 실망이나 좌절이 클 수밖에요. 연꽃을 만나러 가는 바람이 아니라, 연꽃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욕심과 집착을 버리는 지혜가 필요한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올바른 부처의 마음에 이르고자 하는 소원이 담겨 있다고 보면 되겠는지요. 또 이렇게 보면 어떨까요? 현세에서 만남과 이별은 가장 큰 사건입니다. 그중 이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는 문젯거리가 아닐 수 없죠. 이별할 때 마치 연꽃을 만나고 가는 바람처럼 섭섭함과 괴로움과 아쉬움들을 다 떨쳐버리라고 말하는 건 아닐는지요. ()

 

인생은 사람과 만남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별로써 끝납니다. 수많은 만남이 있지만 부모를 만나 이 세상에 태어나고, 부모의 품에서 자라고 성장해서 또 부모가 그랬듯이 새 연인을 만나 사랑하고 자식을 낳아 키우고 끝내 늙고 병들어 자식의 손을 놓고 영영 이별함으로써 인생을 마감합니다. 이별은 슬픈 것이고 가슴 아픈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과는 반드시 이별하는 것이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이법이요, 헤어지면 또 만나는 것이 거자필반(去者必返)의 법칙이지요. 그러나 이별하고 그리움으로 다시 만날 수 있는 인연이 있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죽음의 이별은 영원히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쉬움이 더 크고 슬픔의 고통은 갑절이 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그리움도 없고 이별의 아픔도 없습니다. 이별이 없으면 그리움도 없고 만남도 없습니다. 저승은 너무 먼 곳에 있기 때문에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온 사람이 없어 실재(實在)를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모두가 동의해서 다음 세상을 약속했습니다. 이 세상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한 극락 천국을 약속했습니다. 옛 시를 보면 송별을 노래한 시에 명품시가 많습니다. 미당(1915~2000)의 시에서 이별의 소재는 연꽃입니다.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의 시구처럼, 미당은 이별과 만남의 무대를 관무량수경에 나오는 연꽃이 피는 구품극락 정토로 상정하고 그곳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는 이별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입니다.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는 이별을 예고하는 이미 만난 소중하고 묵은 인연입니다. ‘바람은 인연을 상징하는 시어이지요. 가신 님아, 너무 서러워 마라.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내생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이별입니다. 이별의 아픔을 잔잔하게 내생을 기약할 수 있는 연꽃 호수로 인도하는 시인의 자애로움이 있습니다. 이별을 노래한 미당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는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영 이별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명품 이별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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