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94) : 풀리는 한강가에서 / 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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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594)

 

 

풀리는 한강가에서 / 서정주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기러기같이

서리 묻은 섣달의 기러기같이

하늘의 얼음짱 가슴으로 깨치며

내 한평생을 울고 가려 했더니

 

무어라 강물은 다시 풀리어

이 햇빛 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

 

저 민들레나 쑥잎풀 같은 것들

또 한 번 고개 숙여 보라 함인가

 

황토 언덕

꽃상여

떼과부의 무리들

여기 서서 또 한 번 더 바라보라 함인가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어렸을 시절 한강물은 겨울마다 완전히 결빙되었지요. 밤이면 얼음이 두터워지려고 얼음 살찌우는 소리가 쩡쩡 울려 퍼지곤 하였지요. 그러나 봄이 다가오면 두껍게 얼었던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얼음덩어리들이 강물 위에서 둥둥 떠다니는 걸 보게 되지요. 이런 모습을 보고서도 시인은 여전히 세상살이가 너무 팍팍함을 느끼나 봅니다. 마치 하늘의 얼음짱을 가슴으로 깨치며 날아가는 추운 겨울 하늘의 기러기처럼 느껴지나 봅니다. 허나 이런 느낌의 마음은 끝끝내 모질지 못하여 슬슬 풀려버리는 한강물처럼 풀려 강물이 풀리다니 // 강물은 또 풀리는가라고 반복 반문함으로써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새로운 삶에 대한 긍정적 자세를 주려고 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네요. 옛날 같으면 절기에 딱 맞는 시인데 요새는 당최 옛날처럼 한강물이 얼지조차 않으니.

 

해마다 봄이면 얼었던 강물이 풀리는 건 자연의 당연한 진리이지요. 하지만 시인의 눈에는 이 당연한 진리가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시인의 눈에 강물은 우리의 슬픔과 기쁨 때문에 풀리기도 하고 얼기도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시에서 슬픔이란 하늘만큼 냉혹한 현실을 평생 울며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고, 장례식이나 젊은 과부를 보아야 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아마도 장례식이나 과부라는 말은 시인이 6.25 전쟁에서 겪은 경험과 관련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강물은 봄이 되면 다시 풀려버리듯, 우리의 삶이 슬픔뿐으로 가득 차 있는 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어요. 이 햇살, 물결, 민들레나 쑥잎 같은 걸 보라고 합니다. 새봄이 되면서 자연이 내놓는 눈부신 신생과 놀라운 기쁨을 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시인은 우리의 삶이 아무리 이별과 슬픔이 많다 하더라도, 새봄에 자연이 낳아내는 수많은 생명체 앞에서는 기쁨이 아니냐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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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미당선생은 대단하십니다. 
    "황토 언덕 꽃상여 떼과부의 무리들
    여기 서서 또 한 번 더 바라보라 함인가"
    한강물이  풀리는데 이런 시를 읊은 시인... 대단하지 않은가요?
    건석형댁에서 옛날에는 한강얼음 쩍쩍 갈라지는 소리 들었겠지요.
    연락주시면 한걸음에 그쪽으로 달려가 한강 얘기 나누며 술잔 기울이면서
    시에대한 말씀도 듣고.. 그러지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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