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91) : 가슴을 바꾸다 / 임현정

나의 애독시(591)

 

가슴을 바꾸다 / 임현정

 

한복저고리를 늘리러 간 길

젖이 불어서 안 잠긴다는 말에

점원이 웃는다.

 

요즘 사람들 젖이란 말 안 써요.

 

뽀얀 젖비린내를 빠는

아기의 조그만 입술과

한 세상이 잠든

고요한 한낮과

아랫목 같은 더운 포옹이

그 말랑말랑한 말속에 담겨 있는데

 

촌스럽다며

줄자로 재어준 가슴이라는 말

브래지어 안에 꽁꽁 숨은 그 말

한바탕 빨리고 나서 쭉 쭈그러든 젖통을

주워 담은 적이 없는 그 말

 

그 말로 바꿔달란다.

 

저고리를 늘리러 갔다

젖 대신 가슴으로 바꿔 달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지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에서 꽃의 실재(實在)가 무엇이든 꽃이라 호명(呼名)될 때 그것은 몸짓에서 꽃이라는 실존(實存)이 되는 것이지요. 자기 존재감(存在感)이란 이처럼 실재와 실존이 만났을 때에만 꽃피울 수 있는 감각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내가 그것이며, 남도 그것이라 불러줄 때 비로소 존재가 완성될 수 있는 것이지요. “뽀얀 젖비린내를 빠는 / 아기의 조그만 입술과 / 한 세상이 잠든 / 고요한 한낮과 / 아랫목 같은 더운 포옹이 담겨 있는 말랑말랑한 말을 세상은 브래지어 안에 꽁꽁 숨겨 두라고 하지요. 그러나 촌스럽다며 / 줄자로 재어준 가슴이라는 말한바탕 빨리고 나서 쭉 쭈그러든 젖통이라는 실재와 실존을 담아낼 수 없는 말입니다요. 시인의 말랑말랑한 젖은 김춘수 시인의 <>과 같은 주제를 노래하지만 세상은 정반대로 불러주는군요. 시인은 이라 부르고, ‘이라 부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세상은 매 순간 꼭꼭 짚어서 가슴이라 교정해 주지요. 아니, 교체해 주지요. 아니, 강제로 바꾸고 있어요. “젖 대신 가슴으로 바꿔달아 주는군요. ()

 

재미있는 시이지요? 젖이 불어 저고리를 늘리러 갔는데, 한복점 점원이 요즘 젖이란 말을 안 쓴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가슴이란 단어로 대체하는 심리는 무엇일까요? 말랑말랑한 젖이 어떻다고 그 말을 기피하는 거지요? 젖에서 성적인 것만을 떠올리는 자는 음란합니다. 젖 빠는 아기의 작고 어여쁜 입술과 한 세상의 고요와 다정한 포옹을 다 버리고 오직 성적인 것만을 연상하는 자는 음란한 놈입니다. 젖을 가슴으로 대체하려는 사회는 위선을 떠는 사회라고 봐야 해요. 시인은 저고리를 늘리러 갔다가 음란사회가 점잔을 떨며 위선을 피우는 걸 눈치채 버리고 있어요. ()




게시글이 어떠셨나요?



다른 이모티콘을 한번 더 클릭하시면 수정됩니다.

2,899개의 글

글 번호제목작성자작성일조회
2899서건석05:422
2898서건석26.02.0718
2897서건석26.02.0612
2896서건석26.02.0520
2895서건석26.02.0417
2894서건석26.02.0325
2893모하비26.02.0223
2892서건석26.02.0218
2891서건석26.02.0116
2890편영범26.01.3137
2889편영범26.01.3142
2888서건석26.01.3116
2887서건석26.01.3024
2886서건석26.01.2920
2885서건석26.01.2825
2884서건석26.01.2722
2883모하비26.01.2647
2882서건석26.01.2619
2881서건석26.01.2522
2880서건석26.01.2417
2879서건석26.01.2319
2878서건석26.01.2230
2877서건석26.01.2128
2876서건석26.01.2021
2875모하비26.01.1960
2874서건석26.01.1920
2873서건석26.01.1819
2872서건석26.01.1723
2871서건석26.01.1622
2870박인양26.01.1572
2869편영범26.01.1553
2868편영범26.01.1557
2867서건석26.01.1530
2866서건석26.01.1430
2865서건석26.01.1333
2864모하비26.01.1254
2863서건석26.01.1243
2862서건석26.01.1151
2861서건석26.01.1034
2860서건석26.01.0932
2859서건석26.01.0830
2858서건석26.01.0732
2857서건석26.01.0627
2856모하비26.01.0560
2855서건석26.01.0538
2854서건석26.01.0435
2853서건석26.01.0340
2852서건석26.01.0256
2851서건석26.01.0232
2850서건석25.12.3144
2849서건석25.12.3039
2848모하비25.12.2935
2847서건석25.12.2927
2846서건석25.12.2834
2845편영범25.12.2748
2844편영범25.12.2753
2843서건석25.12.2744
2842서건석25.12.2652
2841서건석25.12.2539
2840서건석25.12.2533
2839서건석25.12.2440
2838서건석25.12.2339
2837모하비25.12.2269
2836서건석25.12.2238
2835서건석25.12.2132
2834서건석25.12.2064
2833서건석25.12.1964
2832서건석25.12.1837
2831서건석25.12.1745
2830서건석25.12.1640
2829서건석25.12.1547
2828서건석25.12.1443
2827서건석25.12.1342
2826서건석25.12.1243
2825서건석25.12.1134
2824서건석25.12.1048
2823서건석25.12.0940
2822모하비25.12.0855
2821서건석25.12.0842
2820서건석25.12.0749
2819서건석25.12.0643
2818모하비25.12.0551
2817서건석25.12.0546
2816서건석25.12.0443
2815서건석25.12.0341
2814박인양25.12.0287
2813서건석25.12.0249
2812모하비25.12.0150
2811서건석25.12.0139
2810서건석25.11.3035
2809편영범25.11.2980
2808서건석25.11.2943
2807서건석25.11.2839
2806서건석25.11.2739
2805서건석25.11.2646
2804서건석25.11.2545
2803모하비25.11.2449
2802서건석25.11.2439
2801서건석25.11.2336
2800서건석25.11.2235
화살표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