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90) : 브래지어를 풀고 / 김나영


브래지어1.jpg




나의 애독시(590)

 

 

브래지어를 풀고 / 김나영

 

 

브래지어 착용이 유방암 발생률을 70%나 높인다는

TV를 시청하다가 브래지어 후크를 슬쩍 풀어 헤쳐본다

사랑할 때와 샤워할 때 외엔 풀지 않았던

내 피부 같은 브래지어를

 

빗장 풀린 가슴으로 오소소전해오는

시원함도 잠깐

문 열어놔도 날아가지 못하는

새장 속에 새처럼

빗장 풀린 가슴이 움츠려든다

갑작스런 허전함 앞에 예민해지는 유두

분절된 내 몸의 지경이 당혹스럽다

 

허전함을 다시 채우자

그때서야 가슴이 경계태세를 푼다

와이어와 후크로 결박해야 비로소 안정을 되찾는

 

나는 문명이 디자인한 딸이다

내 가슴둘레엔 그 흔적이 문신처럼 박혀있다

세상 수많은 딸들의 브래지어 봉제선 뒤편

늙지 않는 빅브라더가 있다

 

 

제목만을 보고는 제목이 뭐 저리 선정적이야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시를 보게 된다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요. 시의 제목은 시의 내용만큼이나 큰 비중을 차지하니까요. 그렇지만 여러분의 예측은 여기까지만 받겠습니다. 만약 시의 내용이 여러분의 짐작을 빗나게 만든다면 그래도 이 시는 선정적일까요.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브래지어 착용이 유방암 발생률을 70%나 높인다는 TV를 시청하다가 쓰게 된 것이지요. 여성의 상징은 가슴이죠. 가슴을 보호하는 목적에서 시작된 브래지어의 역사는 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교묘하게 여성의 미를 부각하는 상품이 되어 왔어요. 사춘기 이후 대부분의 여성들은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삽니다. 그런데 브래지어 착용이 유방암 발생률을 70%나 높인다니! 보호와 아름다움이라는 명목 아래 문명의 잣대로 재단된 여성의 미()는 얼마나 여성의 몸을 억압되고 왜곡해 왔던 걸까요. 우리는 매 순간 어떤 보이지 않는 권력과 문명에 의해 길들여지고 있지요. 문명의 그늘 아래서 우리는 인간 본연의 자연스런 모습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떤 문명은 우리를 행복하고 이롭게 만들어 주기보다는 오히려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어요. 그러나 문명을 둘러싼 틀은 너무나 크거나 익숙해서 잘 느끼지 못할 뿐인 거지요. 역사와 문명이 아무리 발전하여도, 역사와 문명으로 재단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그 외로운 자리에 이 시는 있습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이 간절히 원하는 미세한 파동을 읽어내기 위해서 말입니다.(시인 본인의 해설임) 정말 맞는 말이지요.

 

갈수록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난해한 시들이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솔직하고 구체적인 소재로 한 시에게서 잔잔한 감동을 받곤 합니다. 브래지어에 관한 이 시를 읽다 보면 섬세한 심리와 자유로운 영혼을 지향하는 순수성이 느껴집니다. 와이어와 후크로 결박한 가슴의 흔적을 통해 문명이 디자인한 딸을 발견해 내는 관점도 의미심장합니다. <빅브라더>는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비롯된 용어인데, 흔히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 혹은 그러한 사회체계를 일컫습니다. 결국 이 시의 결말은 규격화된 브래지어 둘레에 눌린 문양 역시 하나의 바코드, 사이즈 별로 정보화되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경고일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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