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78) : 내 살던 뒤안에 / 정양
- 서건석
- 2026.01.26 05:20
- 조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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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578)
♬ 내 살던 뒤안에 / 정양
참새떼가 요란스럽게 지저귀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여들고 감꽃들이
새소리처럼 깔려 있었다
아이들의 손가락질 사이로
숨죽이는 환성들이 부딪치고
감나무 가지 끝에서 구렁이가
햇빛을 감고 있었다
아이들의 팔매질이 날고
새소리가 감꽃처럼 털리고 있었다
햇빛이 치잉칭 풀리고 있었다
햇살 같은 환성들이
비늘마다 부서지고 있었다
아아, 그 때 나는 두근거리며
팔매질당하는 한 마리
구렁이가 되고 싶었던가
꿈자리마다 사나운
몰매 내리던 내 청춘을
몰매 속 몰매 속 눈 감는 틈을
구렁이가 사라지고 있었다
햇살이, 빛나는 머언 실개울이 환성들이
감꽃처럼 털리고 있었다
햇빛이 익는 흙담을 끼고
구렁이가 사라지고 있었다
가뭄 타는 보리밭 둔덕길을 허물며
팔매질하며 아이들이 따라가고 있었다
감나무 푸른 잎새 사이로
두근거리며 감꽃들이 피어 있었다
◑ 새벽에 참새들의 요란한 울음소리로 잠을 깨는 일을 이제는 기대하기 어렵게 되어가네요. 더구나 햇빛을 감고 있는 감나무 가지 끝에 구렁이가 걸려 있는 걸 보리라는 건 이제는 아예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일이구요. 화자는 왜 하필 팔매질 당하는 한 마리의 구렁이 되고 싶었다는 주관적인 발언을 끼워 넣었는지 저로서는 짐작할 수가 없네요. 몰매 당하고 있는 구렁이가 마치 화자가 처해 있던 청춘의 신세와 비슷해서 그랬는가 짐작할 뿐입니다. 흙담을 끼고 서 있는 감나무 아래쯤에서 동네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귀에 연신 들려오고 있는 듯하지요. ‘있었다’라는 종결어미로 이어지면서 전개되는 장면들이 영화 속에서 보는 장면처럼 연신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당신은 어떻습니까?
◐ 시상(詩想)이 단번에 독자의 가슴을 파고 듭니다. 뒤안에 ‘감꽃들이 / 새소리처럼 깔려 있’다는 비유는 생생합니다. 구렁이에 놀란 아이들 손가락질 사이로 ‘숨죽이는 환성들이 부딪’치고, ‘새소리가 감꽃처럼 털리’는 눈부심을 지나 구렁이 몸에서 ‘햇빛이 치잉칭 풀리’는 데로 닿는 경이로운 활력은 언어미학이란 말 한참 위에서 반짝입니다. 새소리와 팔매질과 감꽃과 손가락질과 햇빛이 구렁이에 맞물려 ‘햇살 같은 환성들이 / 비늘마다 부서지’는 정황은 차라리 전율입니다. 살아서 못된 짓을 일삼은 자가 구렁이로 환생한다는 속설을 믿었을 사람들. 순박하달 수밖에 없는 그들의 저주가 구렁이 몸에 몰매처럼 감기는 것을 보면서 화자는 ‘아아, 그때 나는 두근거리며 팔매질 당하는 한 마리 / 구렁이가 되고 싶었던가’라고 충격적인 고백을 합니다. 이날은 6‧25전쟁 초에 행방불명된 줄로 알았던 아버지가 집에 돌아온다고 점쟁이가 예언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구렁이가 나타났습니다. 화자의 꿈속에까지 따라와 ‘몰매 속 몰매 속 눈 감는 틈’으로 사라지는 실체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 가슴 두근거리며 ‘한 마리 / 구렁이가 되고 싶었’다는 서늘한 고백이 왜 현재로 재생되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시가 역사의 숨통을 물고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저주의 대상이 된 구렁이는 짐승이 아니라 부도덕한 집권 세력이 만든 불순한 상징임을 모르는 독자는 없을 겁니다. 친숙한 단어들과 비유로 형상화된 ‘내 살던 뒤안에’는 한국 시사(詩史)에 길이 빛날 절창이자 충격입니다. 불행한 역사를 이 악물고 지켜보겠다는 듯 ‘감나무 푸른 잎새 사이로’ 감꽃들이 두근거리며 피어 있습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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