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51) : 겨울 들판을 거닐며 / 허형만

겨울들판1.jpg



나의 애독시(551)

 

 

겨울 들판을 거닐며 / 허형만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거닐며

매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멀리서 겨울 들판을 바라보면 참으로 삭막하기 그지없지요. 눈보라가 휘몰아친 뒤 찬 바람이라도 몰아치는 날엔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물며 겨울 들판을 거닐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낭만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지요. 그런데 이 시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키울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 겨울 들판을 거닐며 얻은 깨달음을 형상화한 시입니다. 화자는 매운 바람을 맞으며 거닐었던 겨울 들판에는 봄을 기다리는 생명체들이 있다는 걸 깨닫고, 이를 통해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는 깨달음에 이릅니다. 황량한 겨울 들판처럼 막막해 보이는 우리의 현실 속에도 한 걸음 다가서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희망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겨울 들판 속으로 들어가듯 사람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그 사람을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 인간이란 한편으로는 얼마나 허망한 존재인가요. 직접 만나보지도 않고, 겪어보지도 않고, 부대껴 보지도 않고 남의 말만 듣고 예단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요. 그래서 상처 주고 상처받는 일 또한 얼마나 많던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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