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43) : 동지(冬至) / 김유선





동지팥죽2.jpg



나의 애독시(543)

 

 

 

동지(冬至) / 김유선

 

 

팥죽을 쑨다

그냥 끓이면 까맣게 타버리는

사람의 그 깊은 강물을

주걱을 깊이 꽂아 골고루 젓는다

실패든 성공이든 보이지 않는 저 밑바닥

거기부터인 것을 알아야 한다고

어머니는 반 남짓 닳아 버린 주걱으로

한 여자의 똘똘 뭉친 눈물을 젓고 또 저어

부드러운 봄의 해토(解土)를 만드셨다

어머니가 풀지 못한 응어리까지 넣어

나는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붉게 뭉쳐 버린 생의 반점들

내 안에서 생겼거나 밖에서 들어와

어느새 딱딱하게 굳어 버린 멍울을 풀어 준다

끝내 화해하지 못한 너와의 관계가

냄새 먼저 풍기며 타들어 간다 아뿔싸

노여워 마시게 나의 죄여 당신의 죄여

누구 편이어서 죄가 되던 한 해였지

컴퓨터를 하지 못한 것도

강남에 아파트를 사놓지 못한 것도

죄가 된 한 해의 죄 모두 섞어

팥죽을 쑨다

차진 꿈 몇 점 무례하지 않게 빚어 넣어 볼까

불꽃을 적당히 줄여야

맛있는 욕망이 되는 줄

죽을 쑤면서 다시 배우는 동짓날 오늘부터

봄의 시작이라는데

그래서 낮이 길어지는 거라는데

봄이 되어서야 봄인 줄 아는

청맹과니의 한 해를 젓고 또 젓는다

 

 

산다는 일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맺고 풀어 가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동짓날 팥죽을 쑤면서 이 시인은 이러한 삶과 세상살이의 이치를 깨닫고 있군요. ‘한 여자의 똘똘 뭉친 눈물을 젓고 또 저어 / 부드러운 봄의 해토(解土)를 만드는 것입니다. 인생살이의 온갖 고통과 설움, 후회와 탄식을 골고루 섞어 저으면서 딱딱하게 굳어 버린 멍울을 풀어주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거기에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짓게 되는 온갖 죄며 부끄러움, 탄식과 속죄의 눈물까지도 함께 뒤섞여 녹아들면서 응어리는 풀리고 맺히면서 삶의 깊이와 희망이 생기게 되는 것이 아닌지요. 올해는 이런 식으로 팥죽을 한번 쑤어보는 게 괜찮다 싶은데, 어디 요즘 집에서 팥죽을 쑤어 먹나요. 간편하게 사먹고 마니 줄창 입만 살아 놀려대는 철딱서니들이 되고 마는 게지요. 오늘이 동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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