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26)

♬ 우리가 눈발이라면 /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 살이 되자.

◑ 겨울에 내리는 눈은 차갑지만, 펑펑 쏟아져 소복이 쌓이는 함박눈은 왠지 포근한 느낌을 주지요. 반면에 진눈깨비는 비가 섞여 내리는 눈으로 질퍽질퍽하고 차가운 느낌을 주는 눈이지요. 시인은 힘들고 지친 사람을 더욱 어렵게 하는 ‘진눈깨비’와 어려운 사람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는 ‘함박눈’을 대비시키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만들어 가고 있군요. 물론 이 시는 힘들고 어두운 현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이 힘들고 암울하더라도 어려운 이웃에게 힘이 되고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 즉 외로운 사람에게는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편지가 되고, 고통스러운 사람에게는 상처를 치유하는 새 살이 되는 반갑고도 따뜻한 함박눈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겠지요. 입 꾹 다물고 있지 말고 그렇다면 그렇다고 얼른 말씀하시지요.

◑ 눈(雪)은 우리에게 감상의 대상이고 관조의 대상이지요. 소복이 쌓이는 눈에서 따뜻함을, 그리고 휘몰아치는 눈보라에서 으스스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안도현은 우리가 눈이 되자고 합니다. 시인 중에서도 특출한 시인만이 주장할 수 있는 시상입니다. 눈이 되되 진눈깨비가 아닌 함박눈이 되자고 합니다. 진눈깨비는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하는 이미지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것을 피하고 대신 함박눈입니다. 겨울의 함박눈은 포근함의 상징이지요. 시인은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한 듯 앞에 ‘따뜻한’이란 관형어를 붙여놓습니다. 대단한 언어 조련사입니다. 이 시의 포인트는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입니다. 따뜻함이 필요한 공간이지요. 함박눈이 따뜻함을 함축하고 있다면 이런 곳에 내려(찾아가) 편지가 되어주고 상처 위에 돋는 새 살이 되자고 합니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