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500) : 마음의 고향 1 - 백야 / 이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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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500)

 

 

마음의 고향 1 - 백야 / 이시영

 

 

키가 훌러덩 크고 웃을 때면 양볼에 깊이 보조개가 패이는 작은집 형수가 나는 좋았다. 시집온 지 며칠도 안 돼 웃냇가 밭에 나왔다가 하교길 수박서리하다 붙들린 우리 패거리 중에서 나를 찾아내 데름, 그러믄 안 되는 것이라우할 때에도 수줍은 듯 불 밝힌 두 볼에 피어나던 보조개꽃 무늬.

, 웃냇가 웃냇가 방아다리 지나 쑥대풀 우거지고 미루나무숲 바람에 춤추는 곳 사래 긴 밭에 수많은 형수들이 엎드려 하루 종일 밭고랑 너머로 남쪽나라 십자성 부르는 곳 저녁에 소몰이꾼 우리들이 멱감는 냇가로 호미 씻으러 내려와서는

데름 너무 짚은 곳에는 들어가지 마씨요 이할 적에도 왈칵 풍기는 형수의 땀 냄새가 나는 좋았다.

홀시아버지 밑 형제 많은 집으로 시집와 남정네마저 전쟁터에 보내놓고 새벽논에 물대기 식전 밭에 고추따기 아침볕에 보리널기 쏘내기 밭에서 소고삐 몰아 쥐고 송아지 찾기로 여름 내내 등적삼에 벼이슬 걷힐 날 없으면서도 저녁이면 선선한 모깃불을 피워 놓고 콩국수 말아 와상(臥床) 가득 흥겨운 집안 잔치를 벌일 줄도 알았던 형수, 모깃불 매캐하게 사위어가고 하나 둘 어린 형제들 잠들어갈 무렵이면 내 손을 꼭 붙들고 말했다.

데름, 데름은 꼭 우리 집안의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쓰우.”

훌륭한 사람이 워떤 사람인디라우?”

장군 같은 것, 그 뭣이라더라 밥풀 여럿 단 쏘위 같은 것

그러면 마당 한구석에서 다가온 어둠이 빤한 눈으로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잠이 쏟아질 것만 같은 내 눈에 갑자기 별빛 한 무더기가 쏟아져 내렸다. 환한 밤이었다.

 

 

 

이런 구수하고 정겨운 고향의 기억들을 갖고 있는지요. 따스하고 인정 넘치는 대화가 우리의 귓가를 오랫동안 맴돌지 않는가요. 어느덧 데름하고 귓가에 자작자작 스며드는 형수의 목소리가 금방 생생하게 들려올 것처럼 느껴지는 곳, 바로 그리움의 근원인 우리들 마음속 고향입니다. 각박한 세파와 예기치 못할 어려운 인생살이 속에서도 변함없이 언제라도 우리에게 두 팔 벌려 마음을 위무해 주고 감싸안아 줄 것 같은 푸근한 고향! 그런 고향이 비록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라도 그런 고향을 그린 이 시가 깊은 감동과 그리운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습니까요. 이런 분위기의 고향이 어디엔가 지금도 실재(實在)하고 있겠지요. 그리고 고향을 상징하는 그런 형수가 지금 이 세상에도 실재하고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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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건석
    • 2025.11.10 05:51
    건국형, 고마워요. 저의 '나의 애독시'의 역사를 꿰차고 있다니!! 국내에 있는 친구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한데, 이역만리 타국에서 이렇게 관심 갖고 읽어주시니 너무 고마울 따름입니다요. 부디 건강하시고, 즐겁게 사십시오.

    • 편영범
    • 2025.11.10 08:03
    사대주의가 살포시 ㅡ?  ㅎ ㅎ-
    오늘로 '나의 애독시 (500)'을 맞아 처음이 궁금하여 찿아가니 원래 2009.2.9. 시작해서 1,249회로 중단되었다가 2024.1.23.부터 다시 올려지고 있습니다. 처음엔 읽기에 소홀했다가 요즘 즐겨 감상합니다만 함께 올려주는 시평과 사진 음악도 너무 좋습니다. 건석형 고마워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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