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499)

♬ 입동 무렵 2 / 이월춘

깊은 산 높은 곳엔 첫눈이 오셨겠지요

피붙이 일가붙이 가릴 거 없던 시간을 지나

텅 비었습니다 들이며 산이며 다 비었습니다

짚단을 싣고 경운기 한 대가 탈탈거리며

동지 서릿발을 기다리는 뙈기밭 언저리

결실과 풍요의 옆구리를 에돌아

붉게 물든 서쪽 하늘 아래로 잠기어 갑니다

툇마루 옹이구멍을 메운 손길로

당길문 문풍지를 바릅니다

늙은 아버지의 마디 굵은 손가락이 아려 옵니다

미완성의 하루가 저뭅니다

다시 어둠을 밀며 하루가 오겠지요

반복 속에 초심이 있고

그 반복의 힘이 생을 버티는 작대기입니다

◑ 먼저 결구인 ‘반복의 힘이 생을 버티는 작대기입니다’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저는 이 말이 주는 매력에 사로잡혀 이 시를 여기에 옮겼습니다. 사실 누구에게나 반복의 힘이 삶을 지속시키는 바탕이지요. 살아가는 게 별것이 아니지요. 반복의 힘은 습관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한 해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입동 무렵이 되면 어느 먼 곳엔 눈 내리고, 특히 시골에선 들과 산이 텅 비게 됨은 물론이고 가족과 친지들 모두 도회지로 떠난 상태로 적적하겠지요. 하지만 넉넉지 못한 결실과 풍요를 위한 일거리는 많고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해 문풍지도 발라야 합니다. 일이 많아 하루로는 마무리가 되지 않아 늘 미완성인 채로 넘어가고 또 다른 하루가 오지요. 정말로 ‘반복 속에 초심이 있고 / 그 반복의 힘이 생을 버티는 작대기입니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생활의 연속일 겁니다요. 겨울로 서서히 접어드는 요즘, 올겨울은 작년처럼 嚴冬雪寒(엄동설한)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제가 입동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