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zart / Piano Con. No. 23 K. 488 (75)
- 서건석
- 2024.04.28 05:44
- 조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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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음악 감상자가 되기 위하여 ▣
3. 작곡가와 작품 알아보기(75)
75
♣ Mozart / Piano Con. No. 23 K. 488
♬ 1786년 5월 모차르트의 신작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빈의 부르크 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오페라 부파의 한계를 뛰어넘어 희극과 비극이 절묘하게 공존하도록 한 이 작품은 1년 후에 발표될 <돈 조반니>와 더불어 훗날 그의 최대 걸작으로 거론되지요.
한편 이 오페라를 작곡하던 1785년 10월에서 1786년 4월 사이, 모차르트는 세 편의 피아노 협주곡을 나란히 작곡했습니다. 그 세 곡이 바로 22번 E플랫장조(K. 482), 23번 A장조(K. 488), 24번 c단조(K. 503)이었습니다. 모두 같은 해 빈에서 열렸던 일련의 사순절 예약제 연주회(Akademien)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들입니다. 공히 오케스트라에 클라리넷을 기용한 점이 눈에 띄는 이 세 곡은 모차르트가 남긴 스물일곱 편의 피아노 협주곡들 가운데 정점에 위치합니다. 특히 1786년 3월 2일에 완성된 23번은 오보에 대신 들어간 클라리넷이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며 부드러우면서도 어두운 음색을 멋지게 이끌어 냅니다. 친숙해지기 쉬운 선율, 그리고 감명 깊은 느린 악장 등으로 인하여 영화 <엘비라 마디간>에 사용된 21번 C장조와 더불어 가장 대중적인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으로 꼽힙니다. 혹자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가장 모차르트다운 음악’이라고 말합니다. 우아하면서도 단순 명쾌한 구성, 재기 발랄함 속에 빛나는 애잔함 등의 매력이 모차르트다운 음악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 작품에 대해 모차르트의 전기 작가인 장-빅토르 오카르는 “모든 것이 여과되어 있는 우아함과 단순성, 동시에 감각적이고 명쾌한 즐거움이 배어 있다.”라고 평하면서, “그것이 바로 모차르트가 언제나 꿈꾸어 왔던 양식의 절정”이라고 극찬한 바 있습니다. 굳이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유창하면서도 우아한 1악장, 아름답고 우수 어린 2악장, 그리고 경쾌하며 활기찬 3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절정기 모차르트의 세련되고 심오한 음악성을 잘 보여 주는 걸작이라 하겠습니다.
이 작품에 관한 첫 스케치는 178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가 협주곡 한 편을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이 2년이나 소요됐다는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입니다. 나아가 이 작품의 자필 악보에서 피아노는 처음부터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으며, 세부까지 공들여 완성되어 나중에 보충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는 대략적인 스케치를 먼저 진행한 다음 나중에 마무리를 했던 모차르트로서는 이 또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개 작곡가는 독주자를 위해 악보에 독주자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카덴차 자리를 비워두는 것이 관례입니다. 모차르트 역시 대부분의 협주곡에서 카덴차의 자리를 비워두었지만, 이 곡에서만은 예외였습니다. 악보에는 처음부터 완전히 작곡된 상태로 구성되었고, 다른 두 악장에는 카덴차가 들어갈 자리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이는 흔히 다른 협주곡들과는 달리 ‘완전한 유기체’로서 이 작품을 완성하려 했던 그의 의지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첫 악장의 카덴차는 ‘붙박이 카덴차’로 간주되곤 합니다. 반면에 카덴차는 어디까지나 ‘독주자 고유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연주자들도 있습니다. 일찍이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페루초 부소니가 새로운 카덴차를 남겼고,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엘렌 그리모 등은 그 부소니의 카덴차를 사용해서 음반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이 협주곡은 그의 같은 조성의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를 떠올리게 합니다. 만년의 걸작처럼 쾌활한 흐름 속에 깊은 서정미를 간직하면서도 지극히 깊은 감명의 제2악장은 잔잔한 선율과 단조의 조화로 쓸쓸하고 몽환적인 감상을 자아냅니다. 모차르트로서는 드물게 어둡고 우울한 주제로, 특유의 서정성이 강조되는 2악장에서 “모차르트의 밝음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아련한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모차르트를 이해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학자가 있듯, 맑고 투명함 속의 애잔한 슬픔의 미학, 그것이 23번의 매력입니다. 한번 들으면 쉽게 헤어나지 못할 마약 같은 중독성의 음악입니다.
23번 협주곡도 떠올릴 영화는 있습니다. 아더 힐러 감독의 1970년도 작 ‘러브스토리(Love Story)’. 제니와 올리버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의 한 장면. 병마로 핼쑥한 제니가 올리버의 품에 안겨 묻습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A장조가 몇 번이지?” 알아봐 주겠다는 올리버에게 제니가 체념하며 말합니다. “전엔 다 알았었는데…. 내가 왜 이렇지?” 그 A장조가 바로 23번입니다.
23번은 또 스탈린이 유독 애지중지했던 곡으로 유명합니다. 솔로몬 볼코프의 ‘쇼스타코비치의 증언’에 의하면 스탈린은 어느 날 라디오에서 들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과 그것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마리아 유디나에게 흠뻑 빠지게 됩니다. 스탈린은 당장 그녀가 연주한 모차르트 음반을 가져오라고 명했는데, 문제는 스탈린이 라디오에서 들었던 것이 음반이 아니고 실황 연주였습니다. 스탈린에게 유디나의 음반이 없다는 말을 누구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한밤중에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유디나가 소집돼 극비리에 녹음을 했고 다음 날 아침 스탈린에게 배달됐다지요. 당연히 단 한 장의 음반으로. 믿거나 말거나가 아닙니다.
1953년 스탈린은 의문의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의 마지막을 지킨 것은 바로 유디나의 이 모차르트 음반이었다고 합니다. 스탈린의 이런 애정에도 불구하고 정작 유디나는 끝까지 스탈린을 경멸했다고 전해지지요. 23번 예찬론자의 얘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이가 20번도 좋다고 한마디 건네는데, 영화 ‘아마데우스’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20번 2악장을 잊을 수 없다고 말입니다. 하긴 모차르트 음악에 아름답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어요.
제1악장 Allegro. 협주풍 소나타 형식. 쾌활하면서도 우아한 선율의 전개로 듣는 이에게 쾌적하고 아늑한 기분을 안겨주는 첫 악장. 관현악에 의한 제시부에서부터 두 개의 주제를 처음에는 제1 바이올린이 제시하고, 다음에는 목관이 반복하는 정연한 구성으로 안정감을 줍니다. 이어 피아노 독주로 코랄풍의 새 주제가 진행되는데 이는 모차르트가 판 스비텐 남작의 집에서 접했던 바흐 음악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끝에는 카덴차가 서른 마디 정도 나온 후 코다로 넘어가 깔끔하게 마무리됩니다.
제2악장 Adagio. 이 협주곡이 누리는 인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느린 악장.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주고받는 선율은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애상적입니다. 중간에 클라리넷이 이끄는 관악 앙상블이 밝은 분위기를 이끌지만 미묘하게 일렁이는 시칠리아노 풍 리듬에 실려 그 위에 얹힌 단순한 선율은 감동적 우수에 더해 신비로움마저 느끼게 합니다.
제3악장 Allegro assai. 경쾌한 론도 주제 사이사이에 매력적인 부주제들이 삽입된 이 론도 악장은 활기차면서 동시에 드라마틱합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눈부신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 과정에서 목관악기들, 특히 클라리넷과 바순의 활약이 돋보이며, 앞선 악장을 상기시키는 미묘한 단조 부분들도 절묘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이로써 모차르트 음악의 주요 특징들이 골고루 배합된 가장 세련된 협주곡은 더없이 상쾌하게 마무리됩니다.
<Mozart / Piano Con. No. 23 K. 488>
Evgeny Kissin(p), Fabio Luisi(cond)
Berliner Philharmoni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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