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35) : 키 큰 남자를 보면 /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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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35)

 

 

키 큰 남자를 보면 / 문정희

 

 

키 큰 남자를 보면

가만히 팔 걸고 싶다

어린 날 오빠 팔에 매달리듯

그렇게 매달리고 싶다

나팔꽃이 되어도 좋을까

아니, 바람에 나부끼는

은사시나무에 올라가서

그의 눈썹을 만져보고 싶다

아름다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그의 눈썹에

한 개의 잎으로 매달려

푸른 하늘을 조금씩 갉아먹고 싶다

누에처럼 긴 잠 들고 싶다

키 큰 남자를 보면

 

 

 

 

키 큰 남자들은 참 좋겠다! 나처럼 키 작은 남자가 이 시를 읽으면 은근히 부아가 납니다. 취약한 곳이 건드려지는 것 같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크게 언짢아하지는 않습니다. 키가 작아도 이 시를 읽고 있으면 그냥 즐거워지니까요. 이 시에는 낭만적 감성이 짙게 배어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낭만은 사람을 젊게 하고, 시든 꽃도 피어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눈썹에 매달리고 싶고 누에처럼 긴 잠들고 싶어 하는 그 순정한 꿈이 낭만의 구체적 표현입니다. 남자분들, 거울 앞으로 가서 자기 눈썹 한번 좀 살펴보시지요. 여자가 한 개의 잎이 되어 매달릴 수 있는지. 어쨌거나 시인 문정희는 적극적이며 정열적인 여자일 거예요. 그녀의 시적 분위기로 짐작해 보건대 틀림없이 그런 성격의 여자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평소 작은 키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 시를 읽으면 은근히 화가 치밀고 일종의 낭패감 같은 것도 느낄지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이 시는 앙큼상큼합니다. 키 큰 남자가 좋다는 여자들의 내면을 잘도 꿰뚫어 봤기 때문이지요. 키 큰 남자를 보면 팔에 매달리고 싶다는 표현은 어릴 적 오빠에 대한 기억과 맞물려 보통의 수준보다 키 큰 사람이 아닌, 어린 시인에게 오빠처럼 커 보이는 키 큰 남자에 대한 동심의 마음을 대변하겠지요. 눈썹을 만져 보고 싶다면 필히 눈썹의 숱이 많아야 하겠네요. 그냥 만지는 것도 아니고 펄럭이는 눈썹을 바람에 나부끼는 은사시나무에 올라가서 만져 보고 싶다고 하네요. 아름다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눈썹이라면 키도 큰 데다 얼굴도 잘생겼을 것 같은 환장하는 독백의 탄성과 환성이 터져 나올 대상일 겁니다. 키 큰 남자를 좋아하고 의지하고 싶은 여자의 마음을 솔직히 까발려 버렸습니다요. 많은 여자가 남몰래 숨겨왔던 마음을 들켜 버린 듯한 묘한 기분이 들 것 같아요. 외모 같은 건 안 보고 마음을 본다고 큰소리쳤던 철없는 시절의 절규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들겠네요. 남녀 간에 미팅이 이루어지면 여자들이 가장 먼저 보는 건 남자의 키, 남자들이 가장 먼저 보는 건 여자의 얼굴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지요. 여자들이 보는 재산이나 직업이나 능력 등은 키가 크지 않은것에 대한 보상 심리의 작용 같은 거 아닌가요. 아무튼 이 시는 낭만적 감성에 둘러싸여 있어요. 낭만은 사람을 젊게 하고, 시든 꽃도 활짝 피어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하지요. 키 작은 남자도 이 시를 읽으면 자기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질 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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