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32) : 이름 / 이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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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32)

 

 

이름 / 이시영

 

 

밤이 깊어갈수록

우리는 누군가를 불러야 한다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 때

잠시라도 잊었을 때

채찍 아래서 우리를 부르는 뜨거운 소리를 듣는다

 

이 밤이 깊어갈수록

우리는 누구에게로 가야 한다

우리가 가기를 멈췄을 때

혹은 가기를 포기했을 때

칼자욱을 딛고서 오는 그이의

아픈 발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누구인가를 불러야 한다

우리는 누구에게로 가야 한다

대낮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

형제의 찬 손일지라도

 

언젠가는 피가 돌아

고향의 논둑을 더듬는 다순 낫이 될지라도

오늘 조인 목을 뽑아

우리는 그에게로 가야만 한다

그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부르다가 쓰러져 그의 돌이 되기 위해

가다가 멈춰 서서 그의 장승이 되기 위해

 

 

 

 

우리는 누군가를 불러야 한다라고 했을 때, 나도 정말 누군가를 목청껏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김춘수 시인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라고 말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구체적이고 절실하며 마음속으로 용약(勇躍)함이 뻗어가는 걸 느끼며 외치고 싶은 느낌이 듭니다. 우리는 그에게로 가야만 하고, 그의 이름을 목 놓아 불러야만 하는 것이 내가 꼭 해야 할 일인 양 느껴집니다.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초혼> 중의 이 구절은 어떤지요? 사람의 느낌은 원래 제각각이라 어느 한 쪽으로 몰아붙이기는 어려워도 김소월의 영탄(永嘆)조보다는 이 시의 구절들이 훨 낫지 않습니까요?

 

 

이 시는 이라는 어둠 속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그 누구의 이름을 부르며 그에게로 가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어요. 시적 화자를 개인이 아닌 우리로 설정하여 서로의 존재에 대한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으며, 개인적 소망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 염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김춘수의 시 <>과 대조하여 감상할 때 더욱 그 시적 의미를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인데, 김춘수의 <>은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주제 의식으로 씌어진 시이고,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존재에 본질적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이시영의 <이름>은 고난의 현실 속에서 더욱더 동료애를 느끼고자 하는 주제 의식에서 씌어진 시입니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뜨거운 동료애를 바라는 간절한 호소이지요. 김춘수의 <>에서 이름은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데, 이에 비한다면 이시영의 <이름>은 현실적이고 저항적이며 정서적입니다. ‘밤이 깊어갈수록 / 우리는 누군가를 불러야 한다.’라는 건 이시영의 <이름>이 잘못된 현실과 그 고난 속에서 불리어지는 것임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름을 부르는 것을 잠시라도 잊었을 때 / 채찍 아래서 우리를 부르는 뜨거운 소리를 듣는다.’라는 것은 동지애를 조금만 상실하였을 경우에도 우리는 현실의 억압에서 울부짖으며 끌려간 동지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절박한 현실 인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가 씌어진 1970년대 지식인들이 광폭한 유신 독재의 공포정치 밑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갔음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폭압적 현실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보호해 주는 일이란 어려우면서도 절실한 시대였습니다. 시인은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인가를 불러야 한다 / 우리는 누구에게로 가야 한다.’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부르다가 쓰러져 그의 돌이 되기 위해 / 가다가 멈춰 서서 그의 장승이 되기 위해는 죽음까지도 생각한 각오입니다. 폭압적 현실 속에 저항하고자 하는 존재의 처절한 외침, 그것이 이시영의 시 <이름>이 지니고 있는 현실성과 저항적 인간 정신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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