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28)

♬ 전보 / 문정희

나는 너에게

전보가 되고 싶다

어느 일몰의 시간이거나

창백한 달이 떠 있는

신새벽이어도 좋으리라

눈부신 화살처럼 날아가

지극히 짧은 일격으로

네 모든 생애를 바꾸어 버리는

축전이 되고 싶다

가만히 바라보면

아이들의 놀이처럼

싱거운 화면, 그 위에 꽂히는

한 장의 햇살이고 싶다

사랑이라든가

심지어 깊은 슬픔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전보가 되고 싶다

◑ 우린 누군가에게 다가가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 합니다. 혼자 있더라도 무엇인가가 되고 싶은 소망과 의지를 불태웁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의 생애의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이지요. ‘눈부신 화살처럼 날아가 / 지극히 짧은 일격으로’라도 의미를 지닌 그 무엇이 되든, ‘아이들의 놀이처럼 / 싱거운 화면, 그 위에 꽂히는 / 한 장의 햇살이’ 되든 상관이 없습니다. 사랑의 전보가 되든 슬픔의 전보가 되든 무엇인가가 되어야지, 아무것도 아니 되면 아무런 의미와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의미와 가치가 없다고 느낄 때의 허망함과 허전함은 사람을 얼마나 고약하게 만드는지 아실 겁니다.

◑ 옛날, 꼭 전해야 할 급한 소식이 있으면 우체국에 가서 전보를 쳤습니다. 편지보다 빠르게 내용은 간결하게 전보를 통해 소식을 전했습니다. 축전도 많았고 당선 소식도 있었습니다. ‘눈부신 화살처럼 날아가 / 지극히 짧은 일격으로 // 네 모든 생애를 바꾸어 버리는 / 축전이 되고 싶다’는 그야말로 화살처럼 강렬한 불길입니다. 너와 나, 남과 여의 경계를 허물고 그걸 하나로 융합하는 용광로 같은 존재가 바로 전보(電報)였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그것이 사랑이 될 수도 있었고 깊은 슬픔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삶의 한 줄기 빛이 되어주듯, 막다른 골목에서 맞닥뜨린 마지막 비상구 같은 절실한 기쁨을 전해주는,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 그런 전보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