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수필(644) : 가을의 전설 / 정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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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수필(644) : 가을의 전설 / 정영인

 

가을햇살이 우주를 따갑게 익히고 있다. ‘가을 추()’자만 보더라도 벼 화()’불 화()’가 모인 한자이다. 가을 벼가 제대로 익으려면 가을햇살은 불같이 따가워야 한다. 가을햇살은 따갑게 내리 쬐어야 제격이다.

 
  산야의 초목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느라 야단이다. 단풍은 그들이 계절을 마무리하는 꽃의 몸부림이다. 그들의 가장 큰 마무리는 꽃 피운 것을 열매로 맺고 퍼뜨리는 것이다. 그들은 퍼뜨리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민들레나 박주가리는 낙하산처럼 깃털에 씨앗을 매달아 둥둥 떠나보낸다. 도꼬마리나 도깨비바늘은 짐승의 털에 슬쩍 달라붙어 자식을 번식 시킨다. 봉숭아와 콩은 꼬투리를 확 터뜨려 사방천지 어디로든지 날아간다. 단풍나무나 가죽나무는 씨를 프로펠러에 날려 보내기도 한다. 풀과 나무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고안하여 자신의 한 생을 마무리한다.


  풀숲이 우거지고 후미진 길섶에는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배꼽 등이 앙칼지게 가시를 달고 기어오른다. 풀과 나무와 꽃에는 대개가 슬프고 애틋한 전설을 지니고 있다. 특히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견원지간(犬猿之間) 같은 갈등의 전설은 곳곳에 서려있다.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배꼽. 이제나 저제나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전설은 맞닿지 않고 서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어느 며느리는 얼마나 시어머니가 싫으면 자 붙은 다 싫다고 한다. 시금치는 먹지도 않고, 오죽했으면 그 집에는 시계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판 뻔한 거짓말은 딸 같은 며느리, 어머니 같은 시어머니란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어느 나라나 공통적인 앙숙지간인가 보다. 일본에서는 며느리밑씻개를 의붓자식 엉덩이씻개라고 하고, 멕시코에서는 가시가 사납게 난 선인장 금호를 며느리 방석이라고 한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장모가 미운 사위를 사위 방석이라고 한다고 한다.


  사위질빵, 할미멜빵이니 하는 덩굴풀에서도 고즈넉한 전설이 피어오른다. 능소화의 애틋한 사랑도, 할미꽃의 슬픈 전설이나 물망초의 지고지순한 사랑도 솥 적다고 피 맺힌 울음을 토하는 소쩍새도 이 밤의 애틋한 전설을 이야기한다. 이런 전설들도 이젠 가을햇살을 굼실굼실 타고 마무리할 것이다. 그리곤 겨울에는 겨울전설이 이야기 주머니를 풀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어머니 같은 시어머니, 딸 같은 며느리가 웅녀의 단군신화를 이어 현대판 전설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전생에 연이 있어 앙숙지간이었나 보다. 여기에는 아들 사랑을 빼앗긴 어머니의 애증의 세월이, 남편 사랑을 독차지하고 지키려는 며느리의 사랑 다툼이 아닌가 한다. 아마 일종의 사랑에 대한 소유의 집착이 아닌가 한다. 하기야 집착에 벗어나야 해탈의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했던가? 시집살이가 벙어리 3, 귀머거리 3, 그 맵던 시집살이, 딸은 가을볕에 보내고 며느리는 봄볕에 보낸다는 전설이 뒤집어지고 있다. 이제는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는 세상으로 변모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젠 시집살이가 아닌 친정살이로 변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시어머니밑씻개, 시어머니밥풀꽃이 생긴다면 어떤 꽃과 열매일까? 며느리밥풀꽃은 빨간 꼴 속에 하얀 밥풀 같은 것이 두 개 들어 앉아있다.

 

   이제 이 가을에 풀과 나무들은 전설을 가득 품으면서 알알이 익어가고 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밭을 김매다가 뒤를 누운 다음 시어머니는 부드러운 깻잎으로, 며느리는 가시가 까끌까끌한 며느리밑씻개로 닦게 했으니 시어머니의 친딸도 어느 집 며느리일 텐데, 참으로 이율배반적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서리가 내린다고 하던데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이 다가온다.


  가을의 전설이 조랑조랑, 주렁주렁 열리고 있다. 이 전설의 열매를 옛날에는 전설, 지금은 스토리텔링이라 한다. 다 도낀 개낀인데.

 
  시어머니의 미주알 같은 참견과 며느리 미주알이 빠지던 시절이 이젠 반대로 시어머니가 정서적, 신체적, 경제적으로 학대를 받는다고 하니 제행무상이 따로 없다. 어디 안 변하는 것이 있겠나. 제사상에 빈대떡 대신 피자가 오르고 제사도 대신 지내게 하는 세상이다.


  시집 간 딸이 보고 싶어 반보기를 하던 시절이 장가 간 아들이 보고 싶어도 며느리 허락 받고 봐야하는 세상이다.


  이렇게 전설이나 역사는 되풀이 된다. ‘변소와 처갓집은 멀수록 좋다.’라는 속담이 이제는 변소와 처갓집은 가까울수록 좋다.’라고 바뀌듯이.

 


가을이 끝날 무렵 / T.S.Nam(남택상) - Lover on The Autumnroad(낙엽 위의 연인)外

                                                                                                                    



                                                                                                                                                                                          

을이 끝날 무렵/윤주영


나무들은

자신을 비우고 있었네

가을볕 몇 오라기를 덮고 누운

빈들처럼


나무들은

비우지 않고는 채울 수 없는 섭리를

어디서 터득 했을까?

찬란한 가을 의상을

바람도 없는 빈 밤,

서둘러 벗고 있는 것은....


이마의 골 깊이 파일수록

아직도 버리지못한 버려야 할 것들


늦가을 나무들처럼

저렇게 비울 수는 없을까






01. T.S.Nam(남택상) - Lover on The Autumnroad(낙엽 위의 연인)

02. L Reed - The Last Waltz(마지막 왈츠)

03. Claude Ciari - Le Premier Pas( 첫 발자욱)

04. Joan Baez - The River In The Pines(솔밭사이로강물은흐르고)

05. Freddie Aguilar(프레디아귈레라) - Anak(아낙(아들이름)

06. Tish Hinojosa - Donde Voy(나는 어디로가야하나)

07. Ernesto Cortazar - Fiesta Americana Grand Los Cabos(연주)

08. Ernesto Cortazar - La Vida Es Bella(연주)

09. Violin Solo & Chamber(이영훈) - First Love(첫사랑-보리울의여름ost)

10. Lucio Dalla - 4 Marzo 1943 (1943년4월3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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