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 조사 ‘의’ 중첩

일본말이 우리말에 미친 영향은 단어의 문제뿐만 아니라 조사의 사용 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자유에로의 도피’와 같은 표현을 자주 들을 수 있는데 이 말은 조사 ‘에’에 또 다른 조사 ‘로’가 붙고 그 뒤에 관형격 조사 ‘의’를 붙여서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의’와 같은 관형격 조사는 대체로 다른 조사 뒤에 붙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자유에로의 도피’와 같은 표현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요? 이것은 일본어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우리말답지 않는 표현입니다. 이 경우에는 ‘자유를 향한 도피’라고 고쳐 말해야 우리말 어법에 맞습니다.

일본말에서 가장 흔하고 자연스럽게 중첩해 쓰는 것이 우리말의 관형격 조사 ‘의’에 해당한 ‘の(노)’입니다. 그런데 우리말은 원래 ‘의’라는 조사를 그렇게 많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의 집’은 ‘우리 집’ 같은 식으로 줄여서 쓰기를 좋아했고, ‘한 권의 책’ 대신 ‘책 한 권’으로 바꾸어 썼습니다. 그리고 ‘시설의 현대화’보다는 ‘시설을 현대화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처럼 풀어서 쓰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식 조어법에 익숙해진데다가 표현을 간략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조사 ‘의’를 사용하는 경향이 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추세가 계속되다가는 우리말다운 자연스러운 표현은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