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나의 애독시(1152) : 별을 굽다 / 김혜순

환승역1.png



별을 굽다 / 김혜순

 

사당역 4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고

에스컬레이터에 실려 올라가서

뒤돌아보다 마주친 저 수많은 얼굴들

모두 붉은 흙 가면 같다

얼마나 많은 불가마들이 저 얼굴들을 구워 냈을까

 

무표정한 저 얼굴 속 어디에

아침마다 두 눈을 번쩍 뜨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밖에서는 기척도 들리지 않을 이 깊은 땅속을

밀물져 가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하늘 한구석 별자리마다 쪼그리고 앉아

별들을 가마에서 구워 내는 분 계시겠지만

그분이 점지하는 운명의 별빛 지상에 내리겠지만

물이 쏟아진 듯 몰려가는

땅속은 너무나 깊어

그 별빛 여기까지 닿기나 할는지

 

수많은 저 사람들 몸속마다에는

밖에선 볼 수 없는 뜨거움이 일렁거리나 보다

저마다 진흙으로 돌아가려는 몸을 일으켜 세우는

불가마 하나씩 깃들어 있나 보다

 

저렇듯 십 년 이십 년 오십 년 얼굴을 구워 내고 있었으니

모든 얼굴은 뜨거운 심장이 굽는 붉은 흙 가면인가 보다

 


지하철 환승역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마치 유령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는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립니다. 그들의 표정은 무표정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무언가를 위해, 어딘가를 향해, 바삐, 열심히,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지하철 환승역에서 만나게 되는 무표정하면서도 그 안에 꿈틀거리는 욕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후기 산업 사회의 도시적 인간들의 삶의 모습이겠지요. 여러분은 매일 아침에 어떤 생각으로, 그리고 어떤 기운을 가지고 일어납니까요? 우리가 매일 아침에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생각해 보면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부지런하고 규칙적인 인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일까요? 어쩌면 죽는 날까지 매일 같이 무료하게 반복되는 일상적인 일들. 우리를 만든 조물주가 있다면 그가 우리의 삶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다른 어떤 무엇이 있어서 우리는 이렇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걸까요? 저희 나이쯤 되면 신통한 불가마 하나도 가슴속에 남아 있지 않아 뜨거운 심장도 없고, 붉은색 대신 누런 색깔의 흙 가면 쓰고 일상에 그저 버티고 있는 우리는 머지않아 진흙으로 돌아가려는 신세가 아닐는지요. () 컴퓨터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눈에 띈 아래 시를 추가로 선물합니다.

 

 

환승역 에스컬레이터에서 / 공석진

 

낯선 곳에 발을 딛고서

목적지를 배회하는

이방인들은 넘쳐난다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하필이면 이 시간에 여기에서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서

눈을 마주치는 그들을


우주 어느 구석에 박힌 지구

그 많은 나라에서 아주 작은

이 땅 아래 얽히고설킨

바로 이곳 지하철 계단에서

서로를 만났으나

막힌 기적을 무시하고

모른 체 살아가는 그들을


정착할 역 찾지 못해

형벌을 수행하는 죄수처럼

무작정 발길을 옮기는

겹겹이 퇴적된 페르소나를

벗어 던지지 않는 그들을

익명의 그 누구도

결코 알은 척 하지 않을 것이다

 


      비오는 날에 듣기 좋은 클래식 01. 모차르트: 세레나데 13번 2악장 '로망스' 02. 요한 스트라우스 2세: 남국의 장미 03. 멘델스존: 한여름 밤의 꿈 중 '결혼 행진곡' 04. 비제: '카르멘' 중 하바네라 05. 하이든: 놀람 교향곡 2악장 06. 리스트: '사랑의 꿈' 3번 Ab장조 07. 베토벤: 월광 소나타 1악장 08. 크라이슬러: 사랑의 슬픔 09. 쇼팽: 야상곡 C#단조 10. 차이코프스키: 가을의 노래 11. 슈베르트: 아베마리아 12. 브람스: 자장가 작품 49-4 13. 바흐: 인간 소망 기쁨 되시는 주 14. 무소르기스키: '전람회의 그림' 전주곡 15. 슈베르트: 세레나데 16. 그리그: 솔베이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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