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260) :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아버지의 등.jpg



나의 애독시(260)

 

 

아버지의 등을 밀며 / 손택수

 

 아버지는 단 한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

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

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 한번은 입속에 준비해 둔 다섯 살 대신

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

잔뜩 성이 나서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 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 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 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절절한 사연이 들어있는 思父哭(사부곡)이지요. 아버지란 존재는 우리에게 언제나 증오와 분노의 대상이었고, 부정과 극복의 대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남성 우월을 나타내는 가부장적 가족의 중심에 놓여왔죠. 하지만 이 시는 다릅니다. 시인은 먼저 목욕탕에서 얽힌 유년의 체험을 솔직히 말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무관심은 아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줍니다. 그러나 아들과 아버지와의 갈등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극적 계기를 통하여 화해가 이루어지며 오해가 풀리게 됩니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실려 온 아버지. 병원 욕실에서 아버지의 등을 밀며, 아버지의 등에서 시커멓게 죽은 지게 자국을 보게 됩니다. 평생 지게를 지고 걸어온 아버지의 인생이 거기 낙인처럼 찍혀 있습니다. 아버지이지만 자식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자국이 있는 것입니다. 체험적 진실에 바탕을 둔 내용이 감동의 큰 울림을 만들어 주는군요. ()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목욕탕에서 등 밀어줄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한다.’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들은 하나 있어야 한다는 이 말은 수많은 여아들이 세상의 빛을 못 보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시대가 지나, 이제는 대중목욕탕도 점차 사라지고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흐릿해졌습니다. 하지만 어떤 아들에게는 이 말이 한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아들은 목욕 한 번 같이 가주지 않는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 / 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조금 더 머리가 커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 아무렇게나 함부로아버지를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제서야 아버지가 목욕탕에 가지 않은 이유가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 자국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아들은 오랜 소원 하나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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