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201) : 굴비 / 오탁번
- 서건석
- 2025.01.14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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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201)
♬ 굴비 / 오탁번
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굴비 장수가 지나갔다
---굴비 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 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 장수는
뙤약볕 들녘을 휘 둘러보았다
---그거 한 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 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
며칠 후 굴비 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라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안 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박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불렀다
* 굴비 : 항간의 음담. 얼마 전에 이 이야기를 처음 듣고 나는 차마 웃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 자칫하면 계면쩍게 느껴질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태연하게 엮어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지난번 ‘폭설(나의 애독시(193))’에 이어 시인의 대단한 입담에 탄복을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그려. 더구나 쓴웃음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내용을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로 변주해 내다니요! 굴비는 음담패설의 단초입니다. 시중에 떠도는 우스갯소리의 원래 제목은 ‘굴비 두 마리’였지요? 그래서 시인은 제목 옆에 ‘항간의 음담. 얼마 전에 이 이야기를 처음 듣고 나는 차마 웃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라고 설명을 달아 놓았습니다. 가난한 아내의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 마음에 목이 메고 마는 사내의 이야기는 해학과 웃음으로 가득 찬 이야기에 의외로 엉뚱한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사연이야 어떻든 가난한 살림과 굴비에 얽힌 이야기는 사내와 계집이 서로를 위하는 마음만큼은 괜찮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이 이야기는 물론 허구이고, 웃고 즐기자고 누군가가 만들어낸 어른들의 음담일 뿐이겠지요. 이런 음담에도 삶의 진실이란 게 없을 수야 없겠지만 세상에 정말로 이런 일이 일어나기야 하겠어요.
◑ 새겨들으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파격적인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시로 엮어냈어요. ‘굴비’ 이야기는 옛날부터 떠돌아다녔던 음담패설입니다요. 시인도 제목 옆에 “항간의 음담인데 얼마 전 이 이야기를 처음 듣고 나는 차마 웃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라는 설명을 붙여 놓았습니다. 만약 ‘19금’ 시(詩)란 게 있다면 틀림없이 해당되었을 시입니다. 출시 연도가 20년도 훨씬 더 된 작품이기에 망정이지 요즘 같은 민감한 시기라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그러나 음담에 묻어 있는 삶의 곡진함까지 한눈에 통찰하고 변주해 내는 미덕이 스며 있기 때문에 시로 쳐주는 것이겠지요. 앞뒤만 분별할 줄 아는 여인네의 지아비에 대한 사랑과 그 마음에 목이 메고 마는 사내의 이야기는 키득거리는 짓궂은 웃음으로 가득 찬 세상을 전복시킵니다. 그래서 이 시는 음담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엉뚱한 활기를 불어넣어 해학을 넘어섭니다. 굴비를 구해 온 내력을 알고도 굴비를 맛있게 먹고 그저 불퉁하게 볼멘소리 한마디 던지는 사내. 며칠 후 굴비가 다시 밥상에 올랐을 때는 결국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는 사내. 구석지고 축축한 곳에서나 벌어지는 눅눅한 이야기지만 삶의 애환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곡진한 사랑으로만 윤색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이런 시는 자잘하게 설명하고 분석해버리면 자칫 곤란해질 수도 있는 것이지요. ‘솔개그늘’은 솔개가 날개를 펴고 떠 있는 덕에 생겨난 그늘처럼 하잘것없이 좁은 그늘을 말합니다. 그만큼 열악한 환경을 의미합니다. 억척스레 일을 하다가 변변찮은 그늘에 잠시 허벅지를 드러내놓고 휴식하는 사이에 굴비장수의 마수가 뻗쳐왔어요. 죄의식도 ‘비굴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굴비’만 눈에 들어왔을 겁니다. 가난한 살림에 사내와 계집의 서로를 위하는 마음만큼은 참으로 진실하고 갸륵합니다. 그 갸륵함에 개똥벌레, 베짱이, 소쩍새 등 온 자연이 그들의 수수방아 찧기와 함께 호흡하며 장단을 맞춥니다. 사랑의 해탈에 호응하는 우주의 합창이군요. 문학은 작품 속에 흐르는 시대적 정서와 은유를 도외시하고 단편적으로 해석하고 규정짓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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