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839) : 사랑 / 김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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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839)

 

 

♬ 사랑 / 김상미

 

 

그는 남쪽에 있다

남쪽 창을 열어놓고 있으면

그가 보인다

햇빛으로 꽉 찬 그가 보인다

나는 젖혀진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젖혀진 내 목에서

붉은 꽃들이 피어난다

붉은 꽃들은 피어나면서 사방으로 퍼진다

그의 힘이다

그는 남쪽에 있다

그에게로 가는 수많은 작은 길들이

내 몸으로 들어온다

몸에 난 길을 닦는 건 사랑이다

붉은 꽃들이 그 길을 덮는다

새와 바람과 짐승들이 그 위를 지나다닌다

시작과 끝은 어디에도 없다

그는 남쪽에 있다

 

 

 

◑ 찬찬히 읽어보면 사랑시 중에서 이토록 절실하고 아름다운 시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개가 젖혀지지요. 왜요? 남쪽으로 열려있는 창을 통해 햇빛에 꽉 찬 그를 보려고요. 깊이 사랑해 본 사람들은 알 겁니다. 사랑이 힘이 세다는 것을. 몸에 난 길을 닦는 게 사랑이라는 것을. 그를 향해 젖혀진 목에서 붉은 꽃이 피어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붉은 꽃들이 몸에 난 길을 덮는다는 의미를. 사랑의 길은 그 시작과 끝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아, 남쪽 방향으로 가는 수천, 수만 갈래의 길에는 온통 사랑의 꽃이 뒤덮여 있을 겁니다요.

 

◐ 외로움, 그리움, 기다림, 이별, 슬픔... 등의 추상적인 어휘들을 사용하지 않고 ‘사랑’이란 제목으로 詩를 쓸 수 있다면, 상당한 수준의 시적 역량을 가졌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유행가 가사는 거의가 사랑타령 일색이고 그런 추상어들로 점철이 되어 있지요. 아무리 절절한 감정이라도 그렇게 흔해빠진 말로만 표현이 되어서는 진부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 시는 상대에게 온통 기울어가는 사랑의 감정을 식물의 향일성(向日性)에다 빗대고 있군요. 창가에 있는 식물이 해를 향해서 줄기를 벋고 잎과 꽃을 피우는 과정이 상대를 향한 사랑의 마음에 대한 적절한 비유가 되었네요. 감상적이고 추상적인 어휘들을 사용하지 않고 구체적인 사물과 현상을 빌어 형상화(形象化)했을 때 비로소 진부하지 않은 시가 되는 것이지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에게로 가는 작은 길들이 / 내 몸으로 들어온다’라는 표현에 이르러서는 사랑에 대한 성찰의 한 진경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사랑의 길이란 맹목(盲目)이 아니라, ‘새와 바람과 짐승들이 그 위를 지나다니는’ ‘시작과 끝’이 없는 열린 길이라는군요. 사랑이란 가장 감격적인, 아름다운 소통인 것이니까요.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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