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835) : 찔레꽃 / 송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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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835)

 

♬ 찔레꽃 / 송찬호

 

 

그해 봄 결혼식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숲에 가보라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 수년 삶이 그런데 징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 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앴어라 벙어리처럼 하앴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 하필이면 하얀 찔레꽃 덤불 아래라니요! 찔레꽃의 숨소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달밤의 곡절은 아릿하게 가슴을 찌를 겁니다. 누군들 한번은 이런 순간을 가진 적 없겠습니까요. 엎어놓은 흰 사발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전하곤 했던가요. 잊히지도 않고 잊을 수도 없는 찔레나무와 같은 나무가 한 그루씩은 가슴 한가운데 있으리라고 봅니다. 봄이면 흔히 만나는 찔레꽃을 가만히 오래 들여다보다가 이런 청춘남녀를 시인은 이 시에 불러와 올려놓았습니다요. 타인의 그늘이 나의 그늘이 되고, 나의 그늘이 시의 앞면이 되는 생생함에서 시인의 시 정신의 참 모습을 봅니다. 어떤 깊은 절망을 통과한 뒤에 가까스로 얻게 되는 경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펌)

 

◑ 어떤 시는 한 사람의 인생을 짧은 시 한 편에 압축해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시는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 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여자는 결혼식날 찔레나무 밑 하얀 사기 사발 속에 마지막 편지를 남겨 놓았습니다. 남자는 그 편지를 차마 다 읽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고 맙니다. 그렇게 이십 년 넘게 타지를 떠돌다 어느 날 남자는 그때 그 찔레나무 밑에 다시 가보았습니다. 그곳에는 벙어리처럼 하얀 찔레꽃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시를 읽을 때는 하얀 찔레꽃 아래 울고 있는 오월의 뱀에게 마음을 물리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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