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832) : 아내는 언제나 한 수 위 / 서정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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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832)

 

 

♬ 아내는 언제나 한 수 위 / 서정홍

 

 

영암사 들머리

신령스런 기운이 돈다는

육백 년 넘은 느티나무 밑에서

아내한테 말했습니다.

여보, 이렇게 큰 나무 앞에 서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져요”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나는 일 년도 안 된

작은 나무 앞에 서 있어도

저절로 머리가 숙여져요“

 

 

◑ 요즘은 여자 말을 잘 들어야 집안이 편안하다고 하지요. 이 시를 읽으면서 남자와 여자의 속성을 가늠할 수 있겠는데요, 남자들은 시각적이고 상징성을 띤 것에 열심히 반응하고 여자는 현실적이고도 섬세하며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띱니다. 그래서 남자들의 단순함을 뛰어넘지요. 이런 현상은 어쩔 수 없는 남과 여의 생리학적인 차이라고 합디다요. 한 곳에서 오랜 세월 묵묵히 자리를 지켜 온 나무를 보며 자신을 투영하는 한편, 어린 묘목을 보며 모성의 발현인 짠한 마음에 고개 숙여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논제에 관해서는 우세한 남성이 소소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버벅거리게 되지만 여자들의 속사포는 고약하게도 과녁에 딱딱 맞아 떨어져 대적할 맛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거지요. (펌)

 

◐ 수백 수령의 고목을 보자면, 넉넉하고 여여하고 푸근한 품새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우선 듭니다. 한 자리에서 붙박인 채 숱한 사연을 간직하고 갖은 풍상을 지나왔을 것을 생각하면 백 년을 채 못 사는 사람으로서 삼가 경의를 표한 데도 이상할 게 없지요.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는 화자의 말에 십분 공감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자그만한 애기 나무 앞에 고개 숙인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아내의 말을 화자가 바로 인정했듯이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세상에 머리를 내민 어린것들, 가만히 쳐다보며 생명 가진 것의 신비함에 골똘한 적 왜 없겠는가요. 작은 것과 눈을 맞추려면 머리 숙여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 당연한 것을 여직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입니다. 자연의, 있는 그대로의,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하고 감사해하는 마음가짐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아내를 고수로 인정하는 시인의 마음처럼 말입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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