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819) : 감 / 허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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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819)

 

 

/ 허영자

 

 

이 맑은 가을 햇살 속에선

누구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나이 먹고 철이 들 수밖에는

젊은 날

떫고 비리던 내 피도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

 

 

지난 초여름부터 노랗게 피어 있던 감꽃들이 이제는 모두 떨어지고, 허공에 매달린 감들은 따가운 햇살 속에서 그 속살을 살찌우는,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맑고 밝게 퍼져가는 가을 햇살. 그 햇살의 밝음과 맑음 속에서는 그 누구도 어쩔 수 없지요. 그 햇살 받으며 떫고 비린 풋감들이 달콤하게 속살을 익혀가듯이, 사람들 역시 그저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고 또 철이 드는 것, 이것이 살아가는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떫고 비린 감들이 붉고 또 달디단 감으로 익어가듯, 사람들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어가면, 젊은 날의 떫고 비린 객기와 치기, 모두 덜어내고 그저 그 누구에게도 달디단 모습으로 비추어지는 그런 삶, 그런 모습이 되고 마는 것 아니겠는지요. 객기와 치기라는 젊음의 그 특권을 잃어버린, 그런 사람이 되어 다만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 없는그런 우리네의 삶. 그리하여 이 가을은 어쩌면 우리들로 하여금 한 걸음 더 성숙의 길로 들어가게 하는 계절인지도 모릅니다. 그 여름의 무더위와 폭우와 구름 속 우렁거리던 천둥을 온몸으로 겪어낸, 그래서 더욱 단아한 모습인 성숙으로 들어서는 계절이 바로 가을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숙은 어느 의미에서 젊음을 버리는, 아니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그 젊음을 포기하는, 그러한 길이 아니겠는지요. ()

 

맑은 가을 햇살 속에서는 모든 것이 익어갑니다. 곡식과 과일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시인은 나이 먹고 철이 들 수밖에없다고 하였습니다. 들녘에 서서 익어가는 것들을 본 적이 있는 경우라면 시인의 이 말이 더 핍진(逼眞)하게 다가올 겁니다. 교만을 내려놓고 겸허를 배우기 좋은 곳이 바로 가을철 들녘입니다. 해질 무렵 서걱이는 바람 속에서 무거운 곡식과 열매를 달고 있는 피조물을 보고 있노라면 대자연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아니, 굳이 들녘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익어가고 있는 것이 잘 보이는 곳에 서기만 하여도 우리의 마음은 어느새 겸허해지기 마련입니다. 그 겸허해진 만큼 우리는 익은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익어가고 있는 것이 왜 하필이면 붉은 단감일까요? 시에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붉은 단감의 빛처럼 아름답게 성숙하라는 뜻일 겁니다. 또 단감의 맛처럼 달콤하게 성숙하라는 뜻일 겁니다. 감이 가을 햇살에 더 빛나도록 하기 위해 감나무가 잎을 내려놓듯 우리가 아직 내려놓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성숙이 아닐 겁니다. 또 맛있는 성숙도 아닐 겁니다. 젊은 날의 떫고 비리던 피까지 달디단 감으로 익어가게 하는 가을이야말로 정말 위대한 계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계절 어느 한켠에서 한 자락 슬픔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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