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817) : 가을 / 송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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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817)

 

가을 / 송찬호

 

 

!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 ,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 콩꼬투리에서 튀어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 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가을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 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 가웃은 된다고 빙그레 웃었다

 

그나저나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 않은 꼬투리들이 따닥 따닥 제 깍지를 열어 콩알 몇 낱을 있는 힘껏 멀리 쏘아 보내는 가을이었다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 다래넝쿨 위에 앉아 있던 콩새는 자신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 꼭 콩새만한 가슴만 두근거리는 가을이었다

 

 

* 산비알 : 산비탈의 충청도 방언

* 묵정밭 : 오래 내버려두어 거칠어진 쑥대밭

 

이제 수확의 계절이지요. 자연 만물의 넉넉한 수확물에 큰절하게 되는 계절, 대자연의 질서정연한 순환고리 속에서 우리는 좀 더 자신을 깊이 성찰하기도 합니다. 첨단을 다투는 경쟁 속도가 존재하지 않는, 청정 무공해 지역의 농촌 정경이군요. 콩밭에서 잘 익은 콩들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저절로 튑니다. 그 자연의 생생한 숨결과 역동적인 사물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살아있습니다. 날아가는 콩이나 장끼, 멧돼지, 콩밭주인, 콩새, 시적 화자, 어느 것 하나 주인공 아닌 것이 없네요. 바로 우리의 생래적 마음의 고향이 여전히 남아 있는 서정적 정황 바로 그것입니다요. 이 자연의 섭리 안에서 또다시 가을을 맞는 우리, 이번엔 어떤 수확물을 거두여야 하는 건지요. 서러운 가을로만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콩새처럼 두근거리는 가을로만 장식할 것인지. 근데 어떤 것으로 치부하든 어떤 것으로 장식할지 상관없이 가을과 함께, 가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넘치는 기쁨 있나이다!!

 

이 시는 2008년 제8회 미당 문학상 수상 작품입니다. 시골 청정 지역의 생생한 숨결과 역동적인 사물의 움직임이 원형 그대로 포착되었습니다. 콩과 콩밭만으로 그려낸 가을 농촌 정경입니다. 장끼며, 노루며, 멧돼지, 콩새 등이 등장합니다. 질박한 가운데서 수확의 기쁨을 나누고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감사의 무릎을 꿇는 노인 농부의 모습이 풍경화처럼 펼쳐집니다. 내년이면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는 외딴 콩밭이 처한 현실과, 황두 두말 가웃의 소출에 빙그레 웃는 소박한 가난.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고 하는 인생무상. ‘니 여태 거기서 머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고라며, 콩새에게 남은 콩을 어서 주워가라고 재촉하는, 무위(無爲)와 무욕(無慾)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복고적 전통 감각과 시적 언어의 미학이 돋보이는 우수한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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