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809) : 벼랑끝 / 조정권


벼랑1.jpg



나의 애독시(809)

 

 

벼랑끝 / 조정권

 

 

그대 보고 싶은 마음 죽이려고

산골로 찾아갔더니 때 아닌

단풍 같은 눈만 한없이 내려

마음속 캄캄한 자물쇠로

점점 더 한밤중을 느꼈습니다

벼랑끝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가다가 꽃을 만나면

마음은

꽃망울 속으로 가라앉아

재와 함께 섞이고

벼랑끝만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이 시는 벼랑 끝도 두렵지 않은 열정적 사랑과 그로 인한 회의와 절망감이 복합된 연시(戀詩)라고 보면 되겠는지요. 사랑에 빠져 있는 이들은 마음속에 숨겨두는 사연들이 많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런 모든 것들이 사랑으로 만나고 헤어짐을 통해서 생기는 것이지요. 마음을 죽인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라면 세상에 고민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이 세상에 만나야 할 사람이 많지만, 만나지 못하고 영영 헤어지는 일이 더 많습니다. 그렇더라도 잊혀져가는 사랑의 추억만큼은 간직할수록 아름답지만, 혹시 아직 머물고 있는 사랑이라도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사랑을 찾아 길을 나서야겠지요. 그 길이 벼랑 끝으로 인도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요. 오늘이 나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요. ()

 

이 시는 단순한 연애시로 볼 수도 있지만, 대지의 운동성으로 파악할 때 의미는 크게 달라집니다. ‘그대를 지우려는 마음이 죽이려는 마음으로 치환된 첫 시행부터 화자의 절망과 고뇌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적 배경은 외딴 산골의 끝인 벼랑인데 그곳은 일차적으로 내면의 낭떠러지를 암시합니다. 그곳을 화자 스스로 걸어감으로써 그대의 부재에서 오는 절망을 극대화하고 아직 남아있는 그대를 버려두고 오는 죽음의 공간임을 밝힙니다. 이와 같은 심상이 눈만 한없이 내리는 외적 상황과 융화되면서 마음이 점점 더 한밤중처럼 캄캄해지는 절망을 느끼게 됩니다. ‘벼랑끝그대 보고 싶은 마음 죽이기 위한 도피의 장소가 아니라 대지의 깊은 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시적 주체의 귀소본능이자 욕구 충족의 장소가 됩니다. ‘벼랑끝만 바라보며 걸었다라는 진술이 두 번 나오는데 처음의 진술이 연갈이를 통해 벼랑끝이란 절망을 강조한 것과 달리 그 후의 진술에서는 붙여 쓰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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