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803) : 가을 / 마종기


초가을1.jpg



나의 애독시(803)

 

 

가을 / 마종기

 

 

가벼워진다

바람이 가벼워진다

몸이 가벼워진다

이곳에

열매들이 무겁게 무겁게

제 무게대로 엉겨서 땅에 떨어진다

, 이와도 같이

사랑도, 미움도, 인생도, 제 나름대로 익어서

어디로인지 사라져간다.

 

 

옷깃을 여미면서 유난히 끈끈하고 무겁던 지난 여름의 공기를 떠올려 봅니다. 분명 숨이 턱턱 막히던 더위가 있었고 그로 인한 짜증과 그때의 삶이 있었는데. 지금의 서늘한 바람 앞에서는 여름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습니다. 겨우 며칠 전쯤 같았는데, 덧없습니다. 지나간 사랑도 미움도 그렇게 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걸까요. 언제 그랬는지도 모른 채. ‘무게대로 엉겨서땅으로 향하는 열매처럼, 떨어지고 자라기를 반복하는 게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도 벌써 시월 초순. 가을이 결실의 계절이라지만 비우고 버릴 줄 알아야 진정한 가을이라고 하지요. 비우고 비워서 스스로 가벼워지는 일. 무거워 무거워서 스스로 땅에 떨어지는 일. 그 모두가 익을 대로 익어 제 길을 가는 것이지요. 삶도 가을이란 윤회 앞에 비우고 버리며 사라지는 준비의 시간일 겁니다. ‘나름대로 익어서지나가는 세월이 되어야겠지요. ()

 

모든 것이 제 몸의 부피를 버리면서 가벼워지는 이 가을, 이 가벼움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이지요? 나무의 꽃과 이파리, 가지들은 제 자신의 몸을 열매에게 건네주려고 그렇게 된 것이겠지요. 가벼움(사랑)과 무거움(결실)이 공존하는 과도기가 바로 가을인 것이지요. 가벼운 것들은 가벼운 대로 무거운 것들은 무거운 대로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지요. 우리도 이와 같은 자연의 순환하는 질서를 늘 눈여겨보아 오고 있지요. 제 나름대로 익어서 어디론가 사라져 간다는 것, 진정 가을이 아름다운 것은 소멸의 시간이 아니라 누군가를 향해 자신을 내주는 상생의 시간이라는 점이지요. 우리도 아름다운 마무리를 짓기 위하여 어디론가 사라져 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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