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721) : 낙화(落花) / 조지훈


낙화4.jpg




나의 애독시(721)

 

 

낙화(落花) /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주렴(珠簾)(명사) : 구슬 따위를 꿰어 만든 발.

* 우련하다(형용사) : 1. 형태가 약간 나타나 보일 정도로 희미하다. 2. 빛깔이 엷고 희미하다.

* 저허하다(동사) : [옛말] ‘저어하다(염려하거나 두려워하다)’의 옛말.

 

 

 

이 시는 꽃이 지는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지요. 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애상적(哀想的) 분위기는 진다’, ‘스러진다’, ‘끈다’, ‘어린다와 같은 소멸의 이미지와 관련이 깊겠지요. ‘꽃이 진다라는 주요한 시적 주제를 중심으로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소멸의 이미지로 설정되어 비애의 감정을 더하고 있네요. 절제된 시어(詩語)도 물론 한몫 거들고 있지만 말입니다. 새벽별이 지고 소쩍새가 울고 미닫이문을 통해 꽃이 지는 광경과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지는 붉은 꽃잎은 아름다움과 아픔을 동반하여 한없이 쓸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요. 그래서 소멸의 비애를 느끼게 되는 거겠지요. ()

 

떨어지는 꽃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삶의 무상감과 비애를 담담하게 노래한 작품입니다. 화자는 꽃이 지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대자연의 진리로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동틀 무렵, 별이 하나둘 사라지고 귀촉도의 서러운 울음소리도 사라진 후에, 화자는 미닫이창에 은은히 붉게 비치는 꽃의 그림자를 바라봅니다. 꽃이 떨어지면서 드러내는 은은한 붉은 빛은 세상을 피해 꽃과 함께 살아가는 화자의 서글픔이 담겨있는 빛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꽃은 화려한 자태로 곤충을 유혹하고 비로소 수정하고 꽃잎을 떨굽니다. 그래서 꽃이 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바로 임무의 변경입니다. 한 여름 꽃으로 살 수 없기에 유별난 햇볕과 바람 태풍도 견디는 모드로 변화하는 겁니다. 변화해야 할 때가 되어서 꽃 스스로 길을 찾아 떠난 것입니다. 자연에 묻혀서 혼자 사는 이의 외로움을 독자들은 알 턱이 없습니다. 자연에 묻혀 사는 것이 외로움일 수 있지만, 혼자 산다는 것 자체가 외로울 뿐입니다. 가야 할 길을 아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는 시구절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꽃이 어떤 때에 일제히 떠나는 모습에 홀로 남은 화자 자신은 더 서글플 수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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