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714) : 정님이 / 이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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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714)

 

정님이 / 이시영


 

용산 역전 늦은 밤거리

내 팔을 끌다 화들짝 손을 놓고 사라진 여인

운동회 때마다 동네 대항 릴레이에서

늘 일등을 하여 밥솥을 타던

정님이 누나가 아닐는지 몰라

이마의 흉터를 가린 긴 머리, 날랜 발

학교도 못 다녔으면서

운동회 때만 되면 나보다 더 좋아라 좋아라

머슴 만득이 지게에서 점심을 빼앗아 이고 달려오던 누나

수수밭을 매다가도 새를 보다가도 나만 보면

흙 묻은 손으로 달려와 청색 책보를

단단히 동여매 주던 소녀

콩깍지를 털어 주며 맛있니 맛있니

하늘을 보고 웃던 하이얀 목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지만

슬프지 않다고 잡았던 메뚜기를 날리며 말했다.

어느 해 봄엔 높은 산으로 나물 캐러 갔다가

산뱀에 허벅지를 물려 이웃 처녀들에게 업혀 와서도

머리맡으로 내 손을 찾아 산다래를 쥐여주더니

왜 가 버렸는지 몰라

목화를 따고 물레를 잣고

여름밤이 오면 하얀 무릎 위에

정성껏 삼을 삼더니

동지 섣달 긴긴 밤 베틀에 고개 숙여

달그랑잘그랑 무명을 잘도 짜더니

왜 바람처럼 가 버렸는지 몰라

빈 정지 문 열면 서글서글한 눈망울로

이내 달려 나올 것만 같더니

한 번 가 왜 다시 오지 않았는지 몰라

식모 산다는 소문도 들렸고

방직 공장에 취직했다는 말도 들렸고

영등포 색시집에서

누나를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끝내 대답이 없었다.

용산 역전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던 내 팔 붙잡다

날랜 발, 밤거리로 사라진 여인


 

이 시는 시인이 즐겨 다루는 형식의 이야기 시로 과거와 현재를 교묘하게 교직(交織)시키며, 70년대의 산업화 과정 속에서 토속적인 삶의 긍정적인 모습들이 사라져가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마주친 용산 역전 밤거리의 한 여인을 통해 추억 속의 정님이를 떠올리게 되고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농촌 공동체를 회상합니다. 명랑, 쾌활하고 순박하기만 했던 정님이가 식모로, 방직 공장 여공으로, 색시집의 창녀로 전락해 갔던 건 당시의 무정한 현실의 비극적 결말이지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이 시의 사실적 묘사는 1970년대 한국 사회가 안고 있었던 여러 문제점, 즉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의 그늘 속에서 생겨난 비참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러한 상황 속에서 무력하고 왜소했던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은연중에 드러내 보여주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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