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705) : 하늘에 쓰네 / 고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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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독시(705)

 

하늘에 쓰네 / 고정희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하늘에 쓰네

 

내 먼저 그대를 사랑함은

더 나중의 기쁨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내 나중까지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보다 더 먼저 즐거움의 싹을 땄기 때문이리니

 

가슴속 천봉에 눈물 젖는 사람이여

억조창생 물굽이에 달뜨는 사람이여

끝남이 없으니 시작도 없는 곳

시작이 없으니 멈춤 또한 없는 곳,

수련꽃만 희게 희게 흔들리는 연못가에

오늘은 봉래산 학수레 날아와

하늘 난간에 적상포 걸어놓고

달나라 광한전 죽지사

열두 대의 비파에 실으니

천산의 매화향이 이와 같으랴

수묵색 그리움 만리를 적시도다

만리에 서린 사랑 오악을 감싸도다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동트는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해지는 하늘에 쓰네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가 알아주지 않아도, 함께 있지 않아도, 그저 내 마음속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감정.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하늘에 쓰네.’ 사랑하는 사람 앞에 당당히 서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는 이의 속삭임이기도 하고, 어쩌면 이미 떠나간 사람을 마음속에서 놓지 못하는 이의 절절한 고백. 사랑은 하늘에 쓰는 일그건 바람에 지워지고, 구름에 가려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글씨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늘에 쓴 글씨는 세상에서 가장 멀리까지 닿을 수 있어요. 그대가 보지 않아도, 오지 않아도, 사랑은 멈추지 않고 내 마음 안에서 자랍니다. “끝남이 없으니 시작도 없는 곳, / 시작이 없으니 멈춤 또한 없는 곳.” 사랑이라는 것은 인간이 정해놓은 시간의 법칙조차 넘어서는 감정. ‘언제부터사랑했고, ‘언제까지사랑할 것이라는 것은 사랑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 시인은 사랑을 시간도, 공간도 초월한 하늘 위의 글로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수련꽃만 희게 희게 흔들리는 연못가에 오늘은 봉래산 학수레 날아와사랑이 얼마나 맑고 고요하며, 또 신비로운 움직임으로 내 안에 머무는지를 절묘하게 그려냅니다. 그 사랑은 화려한 것이 아니라, 수묵화처럼 은은하게 내 마음을 적십니다. 그래서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내 안에 고요히 퍼지는 잉크 한 방울 같은 감정이 차오릅니다. 사랑은 결국, 상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결과를 얻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그대를 위해하늘에 글을 쓰듯, 묵묵히 마음속에서 지켜 가는 것. 그렇기에 아름다우면서도 한없이 쓸쓸합니다. 보지 않아도, 오지 않아도 사랑하는 이의 마음이란 그렇게 외롭고도 찬란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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