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독시(639) : 교외(郊外) / 박성룡

들꽃6.jpg




나의 애독시(639)

 

 

교외(郊外) / 박성룡

 

1

무모한 생활에선 이미 잊힌 지 오랜 들꽃이 많다.

 

더욱이 이렇게 숱한 풀벌레 울어대는 서녘 벌에

한 알의 원숙한 과물(果物)과도 같은 붉은 낙일(落日)을 형벌처럼 등에 하고

홀로 바람 외진 들길을 걸어 보면

이젠 자꾸만 모진 돌 틈에 비벼대는 풀꽃들의

생각밖엔 없다.

 

멀리멀리 흘러가는 구름 포기

그 구름 포기 하나 떠오름이 없다

 

2

풋물 같은 것에라도 젖어 있어야 한다.

풀밭엔 꽃잎사귀,

과일밭엔 나뭇잎들,

이젠 모든 것이 스스로의 무게로만 떨어져 오는

산과 들이 이렇게 무풍(無風)하고 보면

아 그렇게 푸르기만 하던 하늘, 푸르기만 하던 바다, 그보다도

젊음이란 더욱 더 답답하던 것,

한없이 더워 있다 한없이 식어 가는

피비린 종언(終焉)처럼

나는 오늘 하루

풋물 같은 것에라도 젖어 있어야 한다.

 

3

바람이여,

 

풀섶을 가던, 그리고 때로는 저기 북녘의 검은 산맥을 넘나들던,

그 무형(無形)한 것이여.

너는 언제나 내가 이렇게 한낱 나뭇가지처럼 굳어 있을 땐

와 흔들며 애무했거니,

나의 그 풋풋한 것이여,

불어 다오,

저 이름 없는 풀꽃들을 향한 나의 사랑이

아직은 이렇게 가시지 않았을 때

다시 한번 불어다오, 바람이여.

아 사랑이여,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로 시작하는 시를 혹시 기억하는지요? 시인 박성룡을 풀잎의 시인이라고 부릅니다. 풀잎 풀잎 자꾸 부르면 우리 몸과 마음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된다고 하던풀이 아니라 풀잎! 그리고 여기, 그 청신한 풀잎의 감각을 풋물 같은 것으로 펼쳐 놓고 우리 몸 어딘가 작은 일부라도 풋물에 적셔두고 살자는 풀잎 마음을 전합니다. 동시처럼 해맑은 시 <풀잎>의 어른 버전, 혹은 클래식 버전이라고 할까요. 시는 기본적으로 아날로그의 영혼을 가진 장르라고 합니다만, 오래된 시인들이 보여주는 고품격 아날로그의 타전에 숙연해지는 때가 많습니다. ‘모진 돌 틈에 비벼 피는 풀꽃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나를 흔들어주는 바람에 감사합니다. 우리, 흔들리면서, ‘풋물 같은 것에라도 젖어 있어야합니다. 아직도 풋풋한 사랑을 꿈꾸면서. 그러면 주책을 떠는 거겠지요? ()





게시글이 어떠셨나요?



다른 이모티콘을 한번 더 클릭하시면 수정됩니다.

2,992개의 글

글 번호제목작성자작성일조회
2992모하비12:156
2991서건석06:237
2990서건석26.04.2610
2989편영범26.04.2523
2988편영범26.04.2517
2987서건석26.04.257
2986서건석26.04.2412
2985서건석26.04.2314
2984서건석26.04.2216
2983서건석26.04.2116
2982모하비26.04.2033
2981서건석26.04.2018
2980서건석26.04.1917
2979서건석26.04.1819
2978서건석26.04.1732
2977서건석26.04.1626
2976서건석26.04.1520
2975서건석26.04.1419
2974모하비26.04.1342
2973서건석26.04.1322
2972서건석26.04.1219
2971서건석26.04.1129
2970서건석26.04.1021
2969서건석26.04.0922
2968서건석26.04.0830
2967서건석26.04.0725
2966모하비26.04.0634
2965서건석26.04.0621
2964서건석26.04.0528
2963서건석26.04.0427
2962서건석26.04.0323
2961서건석26.04.0226
2960서건석26.04.0133
2959서건석26.03.3132
2958모하비26.03.3047
2957서건석26.03.3023
2956서건석26.03.2928
2955편영범26.03.2851
2954서건석26.03.2830
2953서건석26.03.2732
2952서건석26.03.2648
2951서건석26.03.2538
2950서건석26.03.2437
2949모하비26.03.2350
2948서건석26.03.2326
2947서건석26.03.2235
2946서건석26.03.2121
2945서건석26.03.2034
2944서건석26.03.1930
2943서건석26.03.1824
2942서건석26.03.1737
2941서건석26.03.1634
2940서건석26.03.1526
2939서건석26.03.1431
2938서건석26.03.1341
2937모하비26.03.1260
2936서건석26.03.1229
2935서건석26.03.1128
2934서건석26.03.1034
2933서건석26.03.0935
2932서건석26.03.0828
2931서건석26.03.0730
2930서건석26.03.0635
2929서건석26.03.0531
2928서건석26.03.0427
2927서건석26.03.0341
2926서건석26.03.0227
2925서건석26.03.0134
2924서건석26.03.0133
2923서건석26.02.2839
2922서건석26.02.2832
2921편영범26.02.2846
2920편영범26.02.2859
2919서건석26.02.2560
2918서건석26.02.2444
2917서건석26.02.2330
2916모하비26.02.2256
2915서건석26.02.2234
2914서건석26.02.2130
2913서건석26.02.2032
2912서건석26.02.1931
2911서건석26.02.1833
2910서건석26.02.1746
2909모하비26.02.1649
2908서건석26.02.1652
2907서건석26.02.1531
2906서건석26.02.1447
2905서건석26.02.1336
2904서건석26.02.1243
2903서건석26.02.1153
2902서건석26.02.1048
2901모하비26.02.0968
2900서건석26.02.0966
2899서건석26.02.0835
2898서건석26.02.0747
2897서건석26.02.0637
2896서건석26.02.0543
2895서건석26.02.0436
2894서건석26.02.0345
2893모하비26.02.0273
화살표TOP